login join  
불한당,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리뷰)
 너냐  hit :  206  
http://m.blog.naver.com/theno★rmal_1/221018439162

0.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을 보고 수많은 영화와 시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많은 작품들을 곱씹다가 결국 내게 남은 것은 최승자의 시 한구절이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다 /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대체 이 영화가 어떤 영화기에 이 절절한 사랑노래를 읊게 되었는지는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1. 일단 기본적인 이야기부터 해보자. 이 영화의 기본적인 장르는 '느와르'다. 하지만 진짜 정통 느와르를 보러갔다간 실망만 하고 돌아올 것이다. 어떻게든 호모섹슈얼적인 이야기를 피하고자 하는 조국에서는 '친형제와 같은 케미','두 남자의 뜨거운 브로맨스' 등으로 어떻게든 포장해보지만 이 영화의 진짜 장르는 깐느에서 정확히 설명했듯 액션러브스토리다. 불한당을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골격은 경찰 조현수가 마약을 취급하는 건달 무리들 사이로 들어가 그들을 소탕하려고 하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면 내가 방금 한줄로 설명한 이 문장이 얼마나 무쓸모한지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언급했듯 불한당의 영화적 배경과 설정은 결국 이 시나리오가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그것은 그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앞뒤를 얽고 살을 붙인 하나의 배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 이제 인물을 이야기 해볼까. 조현수와 한재호. 그래, 이 영화의 중심에는 이 두 인물이 서있다. 훈련점수 1300점 넘은 인간인 경찰 조현수와, 죄의식이 없는 건달새끼 한재호. 결코 접점이란 없어보이는 두 인물은 경기 제2교도소 짝짝이 대회에서 마치 운명처럼 만난다. 파티에서 눈에 띄는 여성을 발견한 남자주인공처럼, 한재호는 혁신적인 또라이 조현수를 그때부터 점 찍는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비극으로 끝날수 밖에 없다. 누가 누구에게 감기든 어쨌든 서로의 뒤통수를 노리는 관계가 아닌가. 그러나 불한당은 여기서 또다시 클리셰를 비튼다. 우리가 익히 보았던 언더커버 요원이 나오는 작품처럼 주인공이 불편한 정의와 익숙한 불의 사이에서 싸우는 대신에 조현수는 너무 쉽게 본인이 경찰임을 한재호에게 털어놓는다. 마치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서 여자주인공이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라고 말했던 것마냥 소주잔을 앞에 두고 죄책감을 못 견디고 형 나 경찰이야. 내가 지금 미친짓 하고 있는 거 알아요, 하고 털어놓고야 만다. 그런데 그게 바로 한재호가 바라던 일이었음을 조현수도 몰랐고 나도 몰랐다. 나는 정통도 아니면서 한재호가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캐치하고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고병갑은 그걸 한재호가 죄의식이 없기 때문이라 평할지 몰라도, 글쎄, 내가 보기엔 한재호는 결함이 많은 사람이고 그걸 이겨내려 애썼기 때문에 타인의 약점을 이용하는 방법을 잘 아는 것이리라. 한재호는 조현수를 제쪽으로 감아보려 조현수가 지키고 싶었던 유일한 존재를 망가트린다. 삶의 이유이자 유일한 목적을 잃자 조현수는 너무나 쉽게 부유하고, 그 순간 진정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준 한재호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누군가는 조현수가 너무 멍청하다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현수는 애초에 대단한 책임감도, 권력욕도 없는 인간이었다. 교도소까지 들어오게 된 유일한 이유를 잃어버렸는데 더 이상 그 비밀을 꽁꽁 숨기고 있을 필요가 무엇 있을까. 조현수는 비범한 인물이 아니다. 그냥 보통사람이다. 그다지 강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한 보통사람.  

한재호와 조현수를 제외하고 흥미로운 인간이라면 단연 천팀장이다. 천팀장은 처음 볼때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아만다 윌러가 생각났다. 모든 빌런보다 더 악마같던 여자. 천팀장이 딱 그렇다. 어째서인지 모를 이 영화의 부제인 '나쁜놈들의 세상'에서 그나마 제일 나쁜놈 다운 건 천팀장이다. 천팀장은 처음부터 목표가 확고하다. 불한당내의 어떤 인물도 내적 갈등같은 건 겪지 않지만 천팀장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길을 가는 인물도 드물다. 목표가 지나쳐서 아래 부하들을 다소 기계적으로 취급한다 싶을 정도지만, 결코 납득이 안 갈정도는 아니다. 천팀장은 스스로 악인을 자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뇌하지도 않는다.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선 이것이 유일한 방법일 뿐이다. 미안해야 할 이유도,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천팀장이 한국영화계에 기념비적인 여성인물임은 굳이 내가 또 말할 필요가 없다. 아무도 초대하지 않은 파티에 멋대로 등장해선 마치 주인공처럼 안녕 얘들아,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은 잠깐이나마 이 영화가 결국 정의의 편에 서나? 하고 믿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선과 악의 구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상 이 반전 아닌 반전도 보통의 서사를 살짝 비틀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부하직원의 모친의 죽음을 숨길정도로 일을 완수하기 위해 애를 쓰던 지독한 여자는 생각보다 허무하게, 그러나 당연하게 끝을 맺는다. 나는 천팀장이 끝까지 살아남아 본인이 원하는 바를 이루길 바랐으나, 변명조차 채 잇지 못하고 스러져 간 천팀장의 마지막에 쾌감을 느끼는 것은 정말 어쩔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고병갑. 조현수가 별 노력 없이 꿰찬 한재호의 옆자리는 원래 고병갑의 자리였을 것이다. 물론 포지션이 달랐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이 영화의 사랑은 비단 한재호와 조현수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병갑은 본인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죽고 고아원으로  처넣은 삼촌 아래에서 일평생 따까리짓이나 하던 인물이다. 그런 고병갑이 오세안무역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설수 있었던 것은 모르긴 몰라도 보통 난 놈이 아니었던 한재호의 덕이 컸을 것이다. 고병갑에게 한재호는 친구이자 일종의 롤모델이며 또 좀 많이 가자면 구원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혼자서는 고회장을 칠 능력도 배짱도 되지 못하니 한재호의 힘이 필요하지 않나. 그러나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을 고병갑의 앞에 조현수라는 꼬마새끼가 등장한다. 그것도 짭새새끼. 고병갑과 한재호는 말하자면 데미안과 싱클레어인데,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를 꼬마새끼에게 데미안을 빼앗긴 것이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사랑과 전쟁인가 싶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고병갑이 또 조현수와 한재호의 사이를 훼방놓거나 방해할만한 존재도 되지 못해서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던 친구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정말로 뭐에 씌여 눈이 멀어버린 제 오랜 친구가 제게 명패를 휘두르는데도 제대로 된 공격의 의지도 보이지 못한 채, 무릎을 꿇는다. 누구에게도 자비를 보이지 않는 자라는 것을, 죄의식따위는 없는 자라는 것을 본인 입으로 몇번이나 확인했으면서. 그 지고지순한 사랑을 누구는 알아줄까. 수직으로 세워 그대로 목덜미로 꽂아내리는 명패마냥, 속도 모르고 쏟아지는 가을비마냥 그 사랑은 그렇게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막을 내린다.



3.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영화 초반의 짝짝이 대회와 최선장 조지는 씬이지만 결국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것은 노란색 빛이 들어오던 낡고 허름한 그 폐건물 안이다. 또한 무슨 말을 할지 알면서도 평소처럼 오래 기다렸지? 하고 다정하게 묻는 한재호와 왔어요? 하고 해사하게 웃는 조현수다. 이 사랑이 어떤 결말로 치닫고 있는지 둘다 알면서 일상적 대화를 이어가는 그 장면은 노력이 가상하다 못해 가엽게 느껴졌다. 결국 이 영화의 결말은 단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지금 나 안 죽이면 네가 죽어." 그렇다. 결국엔 서로에게 방아쇠를 겨눌수 밖에 없는 사이인 것이다. 한재호는 마치 황야의 무법자마냥 자신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전부 한번에 죽여버리고 마침내 조현수 앞에 다시 한번 총구를 겨눈다. 진작 이렇게 해야했는데, 지금까지 못했던 일. 그러나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한재호는 조현수를 못 죽인다. 맘에 안 드는 새끼 죽이고, 결국 오랜 친구까지 죽였으면서 조현수는 못 죽인다. 그리고 대체 무슨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마치 이 모든 순간을 후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다리를 절고 나온다. 좀처럼 평정을 잃는 법이 없던 한재호가 그정도로 무너진 표정을 했던 것은 도대체가 무슨 연유에서였나. 얼마나 조현수가 한재호의 뿌리끝까지 쥐고 흔들었나, 나는 차마 상상하지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 영화의 수미상관 구조는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장치다. 천팀장이 한재호를 차로 치고, 약을 찾아냈을 때 마침내 영화가 끝이 났나 했는데 시나리오는 마지막 키를 조현수에게 건네준다. 조현수는 천팀장은 총으로 쏴죽였으면서 한재호는 손으로 입을 막아 죽인다. 목을 조르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코와 입을 막는 것이다. 교살이 굉장히 감정적인 살인 방법이라 어디선가 들은 바가 있는데, 맨손으로 호흡기를 막아 숨을 끊는다는 것은 더 말할 여지도 없다. 나 같은 실수 하지 말라는 한재호의 말에 조현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얼굴로 한재호의 숨을 막는다. 그리고 딱 한 방울의 눈물이 조현수의 눈과 코, 얼굴을 따라 흐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어느새 푸르러진 하늘을 보면서 한재호의 빨간 스포츠카에서 아무 표정도 없이 누워있는 조현수의 얼굴이다. 피로 얼룩진 그 얼굴을 닦을 생각도 없이 첫장면의 한재호처럼 그 자리 그 곳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아름답고도 슬픈 얼굴을 마주하면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4. 이토록 길고 상세하게 리뷰해본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이걸 리뷰라고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어쨌든 이 영화가 감독의 논란으로 그렇게 평가절하받기에는 아쉬운 작품이라 길게 적어보았다. 영화 스토리와 인물을 따라 적느라 말을 못했지만 편집도, 음향도 상당히 세련된 영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편집과 구조인데 그걸 잘 어울리게 버무려냈다. 복선 회수도, 개연성도 나쁘지 않다. 다소 소모적인 근래의 한국영화랑 틀은 비슷해보이는데 사실 근본부터 다른 영화다. 인기를 끌어보려 브로맨스를 흉내낸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진짜 사랑을 그려냈다. 영화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서 여운은 길지만 전개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5. 불한당을 보고 나서 자꾸만 불현듯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라 발걸음을 멈춘다면 그것은 결코 당신이 이상한게 아니다. 그냥 이 영화가 그런 힘이 있다. 멀쩡히 살다가도 머릿속에 떠올라 다리풀 리게 하고, 마음 미어지게 한다. 그 상대가 조현수건 한재호건 고병갑이건. 누구든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데는 탁월하다.



6. 한재호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결국 남은 선택지는 단 둘 뿐이었겠지. 불신하거나 미쳐버리거나. 그러나 그는 조현수 앞에서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다. 그저 그래도 자기는 형을 믿는다는 거짓없는 얼굴을 온 마음 다해 믿는 것이 전부다.



7. 그래서 나는 조현수와 한재호를 생각하며 또 다시 최승자의 시를 읽는다.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도 말하지 말며 /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다 /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 살아 / 기다리는 것이다. /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네 꽃병에 꽂아다오.


prev   불한당, 변성현 감독이 전하는 '불한당' A to Z #설경구#임시완(인터뷰,스포有)③ 너냐
next   불한당, 소개 영상 너냐

list


Copyright 1999-2019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