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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법원은 안희정을 심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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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법원은 안희정을 심판하지 않았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입력 : 2018.08.16 20:37:00 수정 : 2018.08.16 20:44:25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 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 사건은 정상적 판단력을 갖춘 성인남녀 사이의 일이고, 저항을 곤란하게 하는 물리적 강제력이 행사된 구체적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페미니스트 사라 아메드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인종차별과 성차별 때문”이라고 말한다. 재판부가 김지은의 언행을 해석하여 위력 행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으므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지적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증언을 증거 삼아, 재판부는 안희정의 위력 행사를 심판하지 않고 김지은의 피해자다움만 심판했다.


아는 사람들 사이의 성폭력 사건일수록 이미 형성된 관계 때문에 피해 사실에 대해 의심받기 쉽다. 가해자의 변론은 획일적이다. 피해자가 보였던 친절과 호감은 피해자의 연애감정, 두 사람이 사귀었다는 주장으로 왜곡되고 성적 합의의 근거로 이용된다. 사건 이후 피해자가 즉시 적개심이나 거리감을 보이지 않는 것 역시 피해가 없었다는 증거로 둔갑한다. 직장, 학교, 군대 등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경우 사건발생 후 피해자가 일상의 업무를 ‘멀쩡하게’ 수행했고 가해자에게 여전히 친절하고 순응적이었다는 점이 가해자의 변론에 동원된다. 직장 내 성폭력을 가장 많이 당하는 집단은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말단 신입직원 등 가장 취약한 여성들인데, 그들에겐 좋든 싫든 상사에 대한 친절과 복종이 업무의 일부이다. 위계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력형 성범죄는 취약함 자체를 성적으로 착취할 뿐 아니라, 범죄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취약한 피해자의 상대적 무력함을 다시 한번 이용한다.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감정을 문제 삼으면서 피해자가 필사적으로 저항했는지, 얼마나 고통을 드러냈는지를 심문하는 재판의 양상은 가해자의 시각을 공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안희정 사건 판결에 여성들이 항의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혐의 내용을 구성하는 첫번째 사건 다음날 아침에 원고가 “러시아에서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를 하는 식당을 찾으려 애쓴” 것을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 위력의 작용이 없었다는 근거로 인용했다. 상사를 향한 여성 부하직원의 이타적 연애감정을 전제하고, 합의된 성관계 후 남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꺼이 찾아내서 먹인 행위로 본 듯하다. 이 남성중심적 상상의 관점은 도지사의 심기와 호불호를 살펴 순두부를 찾는 업무를 수행하는 비서가 애당초 도지사와의 성관계에 합의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동등한 입장에 있었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다음날 남자에게 아침을 차려 주었다거나 일상적인 메시지를 보냈다고 증언한다. (러시아에서까지 왜 안희정이 아침에 꼭 순두부를 먹어야 했는지, 좋아하는 음식을 출장지에서 찾아내는 일을 비서에게 시키는 게 고위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인지 여기서 묻지 않겠다. 수많은 비서와 부하직원들이 상사를 위해 이런 부류의 업무를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사회니까.)

그런데 김지은이 철저한 심문의 대상이 된 반면, 안희정의 언행은 판결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안희정이 “맥주를 든 피해자를 포옹한 것”과 “ ‘외롭다, 안아달라’고 말한 것”을 재판부는 “위력의 행사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 부적절한 접근을 위력의 행사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명시하지 않는다. 그 외엔 안희정에 대한 언급이 없다. 낱말 하나로 한밤중에 담배며 술을 방으로 가져오라는 지시도,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주장은 잘못”이라던 처음 진술을 그가 번복했다는 사실도 논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안희정이 미투를 언급하면서 부적절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던 것에 대해서는 해석하지 않으면서, 김지은이 미투에 대한 인식이 있었지만 오피스텔을 나가지 않았다는 것은 적극적 저항 의지 부재로 해석한다.

위력은 물리적 폭력이나 암시적 협박으로만 발휘되지 않는다. 위력을 경험해 본 사람은 이해하겠지만 그것은 “정상적 판단력을 갖춘 성인남녀”를 합리적 판단과 행위의 맥락에서 탈구시키는 힘이다. 일상적인 것일 수도 있는 성적 접근이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면 취약함을 착취하는 행위가 된다. 재판부는 위력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안희정의 “안아달라”는 말이 위력의 행사인지에 합리적 의심을 가진 반면, 물리적 강제력이 없어도 김지은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는 취약한 위치에 있었던 건 아닌지에 합리적 의심을 갖지 않았다. 결국 안희정의 범죄 여부는 안희정이 아닌 김지은의 언행에 대한 판단에 의거해서 결정되었다. 위력을 가진 남자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에서 피해여성이 심판받는 이 곤혹스러운 부조리함은, 공적 판단이 위력을 가진 남성의 가치기준 위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이 판결이 수많은 안희정들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기에 두렵고 염려스럽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8162037005#csidx3e6f22e6dab4882821d306354af69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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