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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영향을 끼친 사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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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epost
2018년 9월 3일, 오전 7:00

<캐롤>, <화양연화>, <패터슨> 세 편의 영화에 영감을 준 사진과 문학 작품들을 짚어본다. 영화, 문학, 사진, 미술 등 각기 다른 특성의 장르가 예술의 범주 안에서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살펴보자.


1. 사진가 사울 레이터와 <캐롤>



1950년대 뉴욕.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들른 백화점에서 ‘테레즈’(루니 마라)를 만난다. 경제력 있고 겉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캐롤과 조금은 소극적이고 수줍은 성격의 테레즈, 사랑의 시작이 언제나 그렇듯 이들 역시 우연한 계기로 만나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영화 속 아름다운 미장센과 어우러진 두 배우의 섬세한 감정 연기는 영화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든다.

토드 헤인즈 감독이 원작 소설인 <소금의 값>에 영향받아 각본을 집필하고, 정식으로 영화화하기까지 11년의 시간이 걸린 영화 <캐롤>(2016)은 공개되자마자 평단의 호평을 모으며 수많은 노미네이션과 수상 이력을 남겼다.



영화는 두 주인공의 만남과 헤어짐의 경과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한발 비껴난 곳에 카메라를 잡고 관객이 감정의 여백을 채워가도록 만든다. 인물들의 미세한 표정과 떨림, 서로를 스쳐 지나간 자리, 그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 영화는 캐롤과 테레즈의 관계 변화를 보다 조심스럽고 우아한 방식으로 담아낸다. 조심스러운 이유는 1950년대 뉴욕 사회가 동성애를 불법인 것, 병적인 것으로 여기던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이 억압적인 분위기를 체감시키려는 듯 카메라는 자주 창문 너머로부터 이들을 비춘다.



미장센에 특히 심혈을 기울인 영화에서 감독은 비비안 마이어, 에스터 버블리 등 1950년대 초반 뉴욕 역사에 획은 그은 포토그래퍼들의 사진을 많이 참고했다고 밝혔지만, 그중 영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사진가는 단연 사울 레이터(Saul Leiter)다. 사울 레이터는 피사체의 또렷한 신체보다 창문이나 거울 등을 통해 굴절된 이미지를 주로 찍었고, 이러한 사진들은 <캐롤>의 장면 장면들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Saul Leiter


©Saul Leiter

한겨울 성에 낀 창문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인물들, 빗속에 흘러내리는 실루엣, 커튼 틈 사이로 작게 보이는 행인, 쇼윈도에 반사된 얼굴…. 장애물에 반쯤 가려진 채 희미하게 보이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 속 인물들은 절제된 우아함을 풍긴다. 이를 포착한 토드 헤인즈 감독은 <캐롤>에서 자동차 차창 또는 상점의 쇼윈도 등을 이용해 장면을 촬영하며, 사울 레이터의 사진이 주는 모호함과 왜곡감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우리 앞에 펼쳐 놓았다. 그렇게 살짝 가려지고 부옇게 흐려진 이미지들은 하나의 각인처럼 새겨져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Saul Leiter


©Saul Leiter

2. 소설가 류이창과 <화양연화>

류이창(劉以鬯, 1918~2018)은 홍콩 현대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1948년 홍콩으로 이주해 60여 년간 소설, 평론, 수필, 시, 등 저서 서른 권 이상을 발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본이 출간된 류이창의 대표작 <술꾼>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중국어권 최초의 작품으로, 자본주의 대도시 주변인들의 초상과 인간 소외를 밀도 높게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

* 의식의 흐름- 3인칭 시점이나 어조로 사건을 서술하거나 묘사하는 것이 아닌 작중 인물의 의식 흐름을 통해 떠오르는 경험, 생각, 느낌 등을 그대로 써 내려 가는 기법.


지난 2014년 창비에서 출간한 류이창의 <술꾼> 번역본

소설의 배경은 홍콩. 상하이 출신의 소설가가 혈혈단신 홍콩으로 이주해와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 아래 그저 술로만 아픔을 달래는 단순한 스토리를 그린다.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문학의 예술적 가치와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인물이지만, 당장 먹고 살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황색소설’을 쓰기에 이른다. 소설에는 상당히 리얼한 내용과 묘사가 포함되는데, 이를 통해 방황하고 갈등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 냄으로써 자본주의화된 홍콩 사회의 불안한 실정을 상세히 묘사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 기법이 도드라진 그의 작품들(<술꾼>, <교차> 등)은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영화 <화양연화>(2000)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62년의 홍콩은 사회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다. 중국 본토에서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결론 나고, 암울한 정치사회경제적 상황에서 많은 상하이 사람들이 홍콩으로 이주했다. 실제 1962년은 왕가위 감독이 홍콩으로 이주한 해다. 어수선하고 낯선 도시, 붐비는 건물 안 비좁은 복도에서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 왕가위 감독의 기억 속 1960년대 초 홍콩의 이미지는 이런 장면들의 잔재일 것이다.




이 영화는 당시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 없이도, 등장인물의 대화 내용과 왕가위 감독 특유의 미장센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홍콩의 공기를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시종 느릿하게 전개되며 별다른 정점에 이르지 못하는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은 닿을 듯 말 듯 서로를 비껴가며 끝내 가까워지지 못한다. 다만 영화는 흐릿한 이미지들과 행동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중첩적인 화면들을 통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공허한 내면과 그 이면의 불안함을 스크린에 투영한다.

    “녹슨 감정이 또다시 비 오는 날과 맞닥뜨렸다. 잡념이 담배 연기의 동그라미 속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창문을 여니 창밖 나뭇가지에 빗방울이 흩내리고 있다. 빗물은 이파리 위에서 댄서의 발걸음처럼 미끄러져 내린다. 라디오를 틀자 갑자기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깨달았다. 좀 나돌아다녀야 한다는 걸.”

    - 류이창 <술꾼> 중


3.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패터슨>



인간의 외로움과 따뜻함, 대도시의 삭막함과 위로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작품을 다뤄온 짐 자무쉬 감독의 최근작 <패터슨>(2017). <천국보다 낯선>(1984), <데드 맨>(1998), <커피와 담배>(2006) 등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짐 자무쉬는 일상 속 소재로 유머와 아이러니를 아우르는 블랙 코미디를 표현하는 것에 탁월하고, <패터슨>에서도 그렇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은 버스 운전사이자 아마추어 시인이다. 패터슨이 틈틈이 쓰는 시가 평범한 일상 속에 던지는 의미처럼, 영화는 일상의 구석구석에 새겨져 있을 인생의 시적 요소를 관찰한다.



영화 <패터슨> 스틸컷. 주인공 패터슨은 아침을 먹으면서 무심코 본 식탁 위의 오하이오 블루팁 성냥갑에 영감받아 시를 쓴다

<패터슨> 프로젝트의 시작은 20여 년 전 짐 자무쉬 감독의 당일치기 여행에서 비롯되었다. 주인공 패터슨처럼 실제로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시인을 존경했던 짐 자무쉬 감독은 시인이 살았던 도시 패터슨을 찾았고, 지역 곳곳을 여행하면서 이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 1883~1963)는 과장된 상징주의를 배제하고 평명한 관찰을 기본으로 한 ‘객관주의’의 시를 쓴 미국 시인이다. 그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일상적인 사물에서 흥미와 새로움을 발견하기를 바랐고, 구어체를 바탕으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시를 개발했다.



그의 말기작 <패터슨>(5권, (1946~1958))은 자전적인 인물 패터슨 박사의 눈으로 바라본 자신의 고향 뉴저지주 패터슨을 찬미한 대표적인 미국적 서사시다. 짐 자무쉬 감독은 이 작품에 착안해 영화를 구상했지만, 스토리나 시구를 직접 차용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에 나오는 시들은 감독이 패터슨 시의 폭포를 보고 영감을 받아 직접 썼거나(‘물이 떨어진다’(water falls)),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미국의 유명 시인 론 패짓이 영화를 위해 새로이 창작한 것들이다.

그러나 영화 <패터슨>은 시집 <패터슨>을 비롯해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라고 볼 수 있다.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평생 소아과 의사로 살며 시를 썼고, 영화 속 주인공 또한 버스 운전사로 일하며 일상 속에서 시상을 포착해 글로 기록한다. 시와 영화, 각기 다른 두 특성의 장르는 이렇게 예술의 영역 안에서 만나 조화로운 한 줄기로 나아간다. 영화의 여운이 남아 있다면,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들을 찾아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국내에 출간된 책 중에서는 장영희의 <생일>에 한 편, 미국 대표 시선집 <가지 않은 길>에 여섯 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시가 흐르는 강>에 그의 시 아홉 편이 수록되어 있다

    내가 먹어 버렸어
    그 자두
    아이스박스
    속에 있던 것
    아마 당신이
    아침에 먹으려고
    남겨둔 것이었을 텐데

    미안해
    하지만 맛있었어
    얼마나 달고
    시원하던지.

    -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 ‘This is to say’

Editor
    최은제
    eunjechoi@indie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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