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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15학번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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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의 시선
어느 15학번의 1년
2016년 1월 14일 글 통감자

술로 시작한 스물이다. 14년 12월 31일,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서 있었다. 스물을 맞이하는 카운트다운은 숫자 하나하나에 ‘스물’이 가득했다. 5에 ‘열정’, 4에 ‘꿈’, 3에 ‘기쁨’, 2에 ‘사랑’, 1에 ‘청춘’이 가득했다.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의 밤은 그랬다. 술잔 하나하나 모두 기쁨의 술잔이었다.

중·고등학교 모두 대안학교를 다녔다. ‘일반적인 삶’의 트랙에서 벗어나서 6년을 산 셈이다. 6년 동안 항상 제도권 교육에 대한 비판과 환상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애증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제도권만이 가지는 특징―예컨대 교복이랄까―에 대한 묘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던 만큼 졸업과 대학진학을 기대했다. ‘우물 안 개구리’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물론 우물 속 삶이 좋았지만, 우물 속에 남아있기에는 우물 밖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조휴일은 왜 20살이 되고 싶지 않았을까? ⓒ 검정치마 1집


대학이 특별히 다른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법으로 10대를 보내고 모이는 곳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와 다른 많은 사람이 존재할 것이기에 쉬운 생활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다른 사람이 많은 만큼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했다.

그렇게 스무 살 대학생활은 시작됐다. 미디어가 다루는 낭만 가득한 캠퍼스 생활이나 아버지가 얘기하던 투쟁과 저항 의지 넘치는 대학생활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미 그런 대학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저 많이 배우고 많이 만나는 것이 즐거웠으면 하는 대학생활이었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괜찮은 스물’을 보내는 것. 단 두 가지의 목표만을 설정한 채 대학생활은 시작됐다.


목표는 실패하라고 존재했나 보다

실패했다. 아무래도 그랬다. 쉬워 보이던 목표는 정말로 어려운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1년 동안 나를 괴롭힌 것은 대학이었다. 단순히 학점이 안 좋았다거나 연애를 못 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실패했다면 차라리 좋았겠다. 처음 맛본 ‘일반적인 삶’은 폭력과 프레임으로 가득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대학에서 ‘까칠한 애’로 통했다. 타인을 비하하는 농담에 대하여 자제하라는 얘기를 하자 “무서워서 네 앞에서는 농담도 못 하겠다”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학교의 등록금 처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쓸데없이 일 크게 만들지 마”라는 말이 돌아왔다. 시끄러울수록 남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의 공포에 점점 닫히는 입을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선배들에게는 예의 없는 아이였다. 처음 보는 선배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들어도, 휴가 나온 선배에게 ‘군부심’ 가득한 얘기를 들어도 나는 가만히 있어야 했다. 가만히 있는 것은 나의 의무였다. 15학번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야 했다. “왜?”라는 조금의 저항은 술, 욕설, 무시 등의 다양한 방법의 폭력으로 끝났다.


실패도 해보고 그래야지 빙고! ⓒ SBS

고등학생 때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수업에서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수평적이었다. 권위로 가득한 사람들과 약자에게 폭력적인 사람들은 수업이나 책, 뉴스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집회를 나가서도 종종 봤다. 그러나 그 모습은 잠깐이었고, 수업이 끝나면 곧 사라졌다.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면 그들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은 사라졌다. “이런 점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에 대한 대답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였다. 나의 일상은 권위와 수직보다는 존중과 수평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20살, 일상이 완벽하게 반전됐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수업에서 여전히 권위와 부조리로 가득한 사회를 배웠다. 수업이 끝나면 사라지던 모습은 오히려 책상에 앉으면 시작됐다. 집회에서 보고, 수업에서 들었던 무서운 아저씨들은 내 앞에 교수와 선배로 나타났다. “이런 점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에 대한 대답은 “이게! 어른이 말하면 그런 줄 알아”로 바뀌었다. 나의 일상은 존중과 수평보다는 권위와 수직으로 가득했다.

필사적으로 일상에서 도망쳤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계속 만나야 희미해지는 나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반적인 삶’의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술집에서 보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얼굴은 잠시나마 나를 제도권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술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그 장면은 사라지고 다시 일상이 돌아왔다.

학교를 비판했다. 대자보를 붙였다. “네가 나대지만 않았어도 그냥 넘어갈 텐데 왜 굳이 일을 크게 만드느냐”라는 말, “학교생활 못 하게 해주겠다” “네 얼굴 봤다”라는 말은 나를 더욱 좌절시키고 침묵시켰다. 그렇게 나는 무기력해졌다.

스물 끝에 남는 것은

‘좌절’, 일상의 완벽한 반전은 커다란 좌절로 이어졌다. 학교상담센터의 상담사는 내 얘기를 듣곤 병원을 가보라는 말과 함께 식권 두 장을 손에 쥐여주었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환상적인 시간을 예상한 내 ’20살’이 우울증이라니. 완벽했다.

술로 끝난 스물이다. 2015년 12월 31일, 꼭 1년 전과 같은 술을 먹고 있었다. 1년 전에는 단지 먹는 것만으로 신났던 그것은, 불과 1년 만에 별것 아닌 것이 됐다. 같은 카운트다운이었다. 숫자 하나하나에 담긴 것은, ‘청년’이자 ‘20살’이라 면 가져서는 안 될 생각들이었다. ‘불안’, ‘불신’, ‘자퇴’ 등은 대한민국의 ‘20살’이 가지면 비정상 취급받는 것들이었다. 함께 둘러앉은 녀석들도 마찬가지. 1년 만에 환호의 얼굴은 없었다. 스물에서 스물하나로 넘어가는 그 순간의 밤은 그랬다. 술잔 하나하나가 그랬다.


19와 21의 경계에 있었습니다 ⓒ Goodbye 20 뮤직비디오 캡쳐

나의 문제이거나, 제도권의 문제이거나. 그 둘의 탓 모두 아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대안학교의 탓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소위 ‘제도권 교육’이 한 사람을 파괴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글쎄, 어쨌든 결론은 단순하다. 내 스물은 그렇게 흘러갔다. ‘20’과 ‘21’, 그 사이의 이야기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글. 통감자(200ㅁㅁys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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