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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A의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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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페툰갤] 여중생 A의 페미니즘
2017년 2월 22일

‘넷페미 시대’는 페미니즘이라는 해석 틀을 제시했다. 혐오를 읽는 건 그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힘이 됐다. 특히 웹툰은 빼어난 접근성과 수용층을 지닌 탓에 페미니즘 논쟁의 격전지였다. 여성혐오부터 대안의 제시까지. 우리는 어떤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페툰갤 2. [여중생A]
작가. 허5파6
연재처. 네이버 웹툰(월)

겨울방학. A는 오후3시부터 새벽4시까지 매일 게임 속에 산다. 방학의 마지막 날 그는 이불 속에서 몸을 떤다. “내일부터는 지옥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학교와 가족, 그리고 다른 많은 일상의 영역들이 지옥과 다름없는 어떤 세계에서 [여중생 A]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중생A(네이버웹툰)

여중생 A를 페미니즘과 묶는 것에 생경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 작품은 근래의 ‘트렌디’한 페미니즘 양상을 본격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다. 샤넬과 스타벅스로 무장한 자본주의적 투쟁도, 연애나 성에 관한 적극적인 해방의 운동도 [여중생 A]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가정폭력과 가난, 따돌림 등으로 게임 속에 고립된 주인공 ‘미래’의 세계가 여러 관계 속에서 점차 확장돼가는 양상, 와중에 그가 목격하는 이 세계의 억압적 남성성, 무엇보다도 여중생 ‘미래’가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정립해 나가는 ‘주체적 모험’은 억압된 개인이 기성권력을 해체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분히 페미니즘적이다.

교차된 억압과 남성성의 세계

‘A’라는 익명의 표상은 미심쩍다. 시간적 의미부여를 담지하는 이름 ‘미래’도 그렇다. 분명 작품은 여러 특수한 억압에 시달리는 특정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개인의 이름은 불특정의 시간을 내포하고, 그 이야기의 제목은 불특정 다수의 ‘A’를 가리킨다.



©여중생A(네이버웹툰)

여중생 ‘미래’가 겪는 학교에서의 불화가 수많은 ‘여중생 A’들과의 충돌 때문이라는 점은 이를 더 의미심장하게 만든다. 심지어 게임 속에서 겪는 여러 사건도 과장된 여성성으로 남자를 홀리고 다니던 ‘희나’ 때문이었지 않은가. 면면들을 볼 때 작품은 페미니즘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갈등은 교차돼 있고, 우리는 좀 더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가령 장노란이 문제 삼는 미래의 ‘음침함’은 가난과 폭력으로부터 물려받은 산물이다. 그는 가정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이백합은 미래의 문학적 감수성을 신경 쓰면서도 자신이 그 위에서 은혜를 베푸는 식의 관계를 만들려 한다. 이때 이백합의 비틀린 욕망은 그녀의 부모 및 가정사와 관련 없을 수 없다.

가족을 폭력적으로 통제하는 ‘아버지 가부장의 존재’라는 지점에서 극상위층 이백합과 극하위층 장미래의 삶은 역설적으로 맞닿는다. 상하관계의 양상(‘미래를 억압하는 백합’이라는)을 보이던 둘에게 유사한 억압기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억압 뒤에 숨은 억압, 그게 바로 ‘남성성의 세계’에서 교차된 억압이다.

숨은 억압은 아버지의 것만이 아니다. 송재민의 ‘여자 얘기’에 치를 떠는 ‘괜찮은 남자애’였던 이태양이 연애관계에서 이백합을 공포에 빠트리는 모습은, 또래 남성집단의 성 권력이 얼마나 강력한지와 함께 상품으로서의 여성권력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싫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백합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사랑을 어필하는 이태양의 모습, 그런 이태양을 낄낄거리며 응원하고, 이백합을 ‘이태양의 여자친구’로 소비하는 밴드부 남학생들, 그 과정에서 ‘드라마 같은 사랑’으로 포장되는 일방적인 감정, 그것이 다시 후배들에게 학습되는 전염의 양상, 마침내 그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며 두려움에 떠는 이백합이 컷에 담길 때 백합은 권력자 이백합이 아닌 남성세계 속 ‘여중생 A’로 서사에 녹아든다.



©여중생A(네이버웹툰)

미래, 레퍼런스 없이 홀로서기

근래 우리는 이제야 겨우 싹트는 여성주체의 목소리를 여기저기서 목격하고 있다. 단톡방 속 성희롱이 고발되고 00계 내 성폭력이 폭로된다. 연애나 섹스, 혹은 최근 ‘여성의 자취방’과 같은 ‘남성적으로 전유되던’ 것들에 대한 여성의 반격 또한 거세다. 모두 보이지 않던 ‘여성의 경험’을 가시화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은 행위들이다. 동시에 비가시화된 남성세계의 권력을 폭로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여중생 미래는 굳이 자신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게임 속의 남녀관계에서, 혹은 코스어 친구의 사생활 속에서 여러 ‘이상한’ 일들을 목격한다. 그 시선에서 최근 까지도 문제가 됐던 게임 내의 여성혐오나, 오타쿠 내 성폭력 등의 이슈를 읽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권력자였던 백합이 공포에 떨며 미래에게 위로를 받는 장면 또한 그에게는 이상한 일이었을 테다. “너랑 같은 고등학교 지망해 볼까? 여고 맞지?” 물어보는 백합의 말은 남성세계로부터의 탈피욕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 같지만, 실상 그 말의 근본적인 의의는 탈피 자체가 아닌 마침내 ‘동일한 주체’로 인정된 미래로부터의 시시한 위로에 있다. 미래는 여고로의 진학을 권하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너 외고 간다며, 넌 너만의 길이 있잖아?”

복잡하게 교차된 ‘정체’를 무리하게 합치지 않고도 서로의 길을 응원할 수 있는 것. A들의 ‘이상한’ 연대는 거기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것은 인지하지 못했던 남성세계의 억압처럼 인지(기대) 밖에서 찾아왔다는 점에서 이상한 일이지만, 또한 미래의 걸어온 서사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명제이기도 하다.

미래는 ‘문학적 감수성’을 통해 대성공 하는 대신 인터넷 소설 작가가 되었고, 유리나 백합 같은 잘나가는 친구를 통해 구원받는 대신 우연한 계기로 말이 통하는 평범한 벗들을 얻었으며, 드라마같은 가부장의 복귀나 정상가족을 회망하는 대신 엄마와 둘 만의 시간으로도 충분히 행복함을 어필했고, 같은 반 첫사랑 이태양과 이어지는 대신 학교 밖 청소년 현재희와 우연히 만나 교감했다.



©여중생A(네이버웹툰)

여느 청춘만화의 전형대로 흘러가는 대신 얼핏 엉뚱한 길을 개척해 나가는 미래의 모험은 역설적으로 가장 완벽한 주체적 모험을 제시한다. 작가는 ‘미래’를 어떤 준비된 통념으로 전개시키지 않는. 다만 미래를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것과 만나게 했다. 시간과 인물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합치된다.

기성의 기대를 벗어나는 만화의 형식은 자체로 A의 일상을 어떤 기성권력에 기대어 전개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같고, 그럼으로써 미래와 다른 많은 A를 모험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리고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경험이 통념을 뚫고 나와 주인공으로 설 때 우리는 그것을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래서 더 많은 A들이 이 작품을 접하길 바란다. 더 많은 A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만나길 바란다.

글. 인디피그(ghㅁㅁin2800@gmail.com)
편집. 콘파냐
섬네일. [여중생A(네이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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