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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는 큰 메가폰 가진 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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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는 큰 메가폰 가진 소수

미국 80년대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 다룬 고전 <백래시> 출간 기념 저자 수전 팔루디 인터뷰…

“세상이 아무리 강하게 반격해와도 여성이 완벽하게 밀린 적 없어”
제1196호

등록 : 2018-01-16 00:34 수정 : 2018-01-18 11:13

1월10일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지난해 12월 국내에 출간된 페미니즘 고전 <백래시> 출간 기념 북토크가 열렸다. 50명 초청 행사에 2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청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백래시>는 미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의 성과가 사회에 제대로 안착할 틈도 없이 ‘반격’(backlash)에 휩싸였던 로널드 레이건의 신보수주의 시대(1981∼89년)를 해부한 연구서다. 1991년 초판이 나왔지만,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은 뜨거운 열쇳말로 다시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2014년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YES_ALL_WOMEN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으로, 2015년 여성의 월경을 공론화한 ‘월경의 해’를 거쳐 에마 왓슨 같은 유명인들의 페미니스트 선언을 지나, 2017년 #ME_TOO 운동이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2015년 소셜네트워크에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운동이 촉발된 뒤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반격도 강해지고 있다. <백래시> 한국어판 출간과 북토크에서의 뜨거운 열기는 이런 복잡한 현실을 반영하는지 모른다. 젠더 돋보기를 통해 대중문화를 해석해온 한국의 페미니스트 손희정이 <백래시> 저자 수전 팔루디를 인터뷰했다. <백래시>를 집필하던 1980년대 이야기에서 시작해 2010년대 ‘다시 돌아온 페미니즘’과 백래시의 변화된 양상, 그리고 트럼프 시대에 대한 소회 등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전자우편을 통해 이뤄졌다. _편집자



1991년 페미니즘 고전 <백래시>를 쓴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 Sigrid Estrada 2016

손희정 1991년 출간된 <백래시>가 꾸준히 재소환되고 있다. 아무래도 ‘다시 돌아온 페미니즘’의 영향 때문일 것 같다. 2014년 이후 페미니즘 물결을 어떻게 보나.

수전 팔루디 이 책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은 자생적인 페미니스트 그룹에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이 운동을 시작하는 지금도, 여성들이 요구하는 성평등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런 운동은 번번이 남성들로부터 (그리고 어떤 여성들로부터) 반격을 당한다. 반격은 남성들이 경제적 위기에 부닥쳤다고 느낄 때 더욱 심해진다. 전 지구적 경제위기 탓에 미국과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가부장제 종말 운운 경계해야”

손희정 경제적 위기와 ‘위기의 남성성’이라는 환상이 <백래시>에서 다루는 “화가 난 젊은 남성들”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여성이, 특히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미래를 훔쳐 달아났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있다.


팔루디 미국 남성들의 반페미니즘적인 분노와 한국 남성들의 분노는 유사한 점이 많다. 양쪽 모두 젊은 남성들이 온라인에서 조작된 사실 등으로 공격하고 화를 부추기는 ‘트롤링’(trolling)을 하고 ‘남성의 권리’를 말하는 그룹을 만들어 집회를 연다. 트럼프를 지지하던 남성 유권자들은 소수자·이민자와 함께 여성들이 그들의 기회를 ‘훔쳐갔다’고 믿는다. 대선 기간에 이뤄진 한 설문에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의 3분의 2가 “나라가 너무 유약하고 ‘여성적’이 되었다”고 답했다. 반페미니즘적 분노는 1990년대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나타나는데, 남성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상실에 대한 분노가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남성이 가족임금을 벌어 가장 노릇을 하고 ‘내 여자’가 집에 머무르던 ‘좋았던 옛날’을 낭만화한다.

손희정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남성들이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에게 분노를 돌리는 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책과 칼럼에서 지적했듯,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누군가가 남성들의 기회를 빼앗아가기 때문이기보다는 일자리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본가와 정치인들은 남성들의 이런 오해를 의도적으로 방관한다.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팔루디 지금 벌어지는 운동에 대해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하비 와인스타인 등 권력을 가진 남성의 성폭력에 대해 ‘나도 그랬다’고 지지하는 해시태그 연대 선언인 ‘미투’(#MeToo)가 열어준 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2017년을 희망차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미디어가 서둘러 ‘가부장제의 종말’을 운운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는 낙태권 논쟁을 되살리고, 남녀 임금 격차를 제도적으로 유지하려는 등 여성을 비롯한 시민의 권리를 퇴행시키고 있다. 몇몇 가부장을 끌어내리는 것으로 가부장제를 끝장낼 수는 없다. 건강보험, 성별 임금 차별 철폐, 가족계획, 성폭력 등과 관련해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페미니즘 마케팅되면 안 돼”



문화평론가 손희정씨가 1월10일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백래시> 북토크를 했다. 50명 정원에 230명이 신청해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21세기북스 제공

손희정 <백래시>에서는 대중문화와 페미니즘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페미니스트들은 대중문화로부터 자양분을 얻고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성장했다. 2014년 이후 페미니즘을 견인하던 힘 중 하나가 에마 왓슨이나 퍼트리샤 아켓 등을 필두로 하는 ‘셀럽 페미니즘’이었다. 이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팔루디 페미니즘은 많은 원천을 가졌고, 다양한 형태를 띤다. 여성의 독립 욕망을 다루는 대중문화는 중요하고 여성에게도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대중화하는 데 일조한다. 비욘세의 페미니스트 선언처럼 말이다. 다만 대중문화 영역에서 페미니즘은 상품을 파는 마케팅 전략과 너무 쉽게 만난다. 페미니즘이 마케팅이 되고 브랜드 전략이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평등을 위한 게 아니다. 여성들이 쟁취하려던 자유와 권리가 퇴행하고 무엇인가를 ‘구매할 권리’로 축소되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손희정 한국에선 보수 기독교 쪽이 헌법 가치를 침해하는 내용을 담은 민원을 넣고 정부 정책에 개입하면서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성평등’이란 용어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양성평등’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도 벌어진다. 급진적 정치학으로서 페미니즘이 우파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팔루디 미국에서도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집권 초기인 1980년대 초반부터 복음주의적 ‘도덕적 다수파’의 지원을 받았다.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의 지원이 트럼프 당선에 핵심적 구실을 했다. 왜곡된 종교적 영향력과 어떻게 싸울까? 종교적 권리 운운이 실제 남성과 여성이 삶에서 겪는 진실을 어떻게 왜곡하고 조작하는지 지치지 않고 지적하는 것 외에 다른 쉬운 해법은 없다. 무엇보다 극우 세력이 ‘주류’가 아니라는 것, ‘다수’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아주 큰 메가폰을 가진 소수일 뿐이다.

손희정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 강력한 대중운동으로 등장한 뒤 외부 공격뿐 아니라 내부 견해 차이로 치열하게 갈등하고 있다. 예컨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트랜스젠더 배제’를 말하는 흐름이 나오기도 했다.

팔루디 미국에선 페미니스트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사이의 반목이 미디어에 의해 과장되거나 증폭된 부분이 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적대감은 ‘몇몇 여자들만 모이는 행사’에 남자가 오는 것을 원하지 않던 소수의 페미니스트와 (이제 더 이상 열리지 않는 미시간 여성 축제 같은) 소수의 분리주의 페미니스트 작가들에게 국한돼 있다. 이들은 대체로 1970년대부터 트랜스 여성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당대의 트랜스젠더 옹호자들과 마찬가지로 젠더 유동성을 믿는다.

손희정 최근 트랜스젠더 여성인 아버지를 다룬 책, <어두운 방에서>(In the Darkroom·2016)가 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팔루디 <어두운 방에서>는 내가 아버지와 화해하는 과정을 다룬 책이다. 아버지는 76살에 타이로 가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되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분투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이고 민족적이며 정치적인 정체성 혼란에도 시달려야 했다. 아버지는 헝가리에서 유대인으로 자랐고, 10대에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그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독교 신자로 ‘보여야’ 했고, 이후로도 계속 정체성을 ‘재고안’해야 했다. 브라질 교외 지역의 다큐멘터리영화 제작자, 뉴욕 외곽에 사는 전통적인 미국식 통근 가장, 등산가이자 근육질의 스포츠맨, 그리고 이미지를 다루는 것이 전문인 고급 광고 사진작가. 결국 아버지는 공산주의가 몰락한 1990년대에 헝가리로 돌아가서 헝가리 우파당을 지지하는 ‘헝가리 애국주의자’가 되었고, 2004년에는 여자가 되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우리 시대의 정체성 탐구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정체성이 단일하고 견고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다층적이고 유동적이다.

손희정 페미니스트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팔루디 나에게 페미니즘은 활력을 찾아가게 해주는 원천이다. 페미니즘은 언제나 내 주변의 모든 것,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이나 나 자신이 가진 가정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가 되살아나더라도 그것이 결국 나의 사유를 더 날카롭게 할 것이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바라건대, 나를 더 강한 페미니스트로 만들어줄 것이다.

“실망과 패배는 다르다”

손희정 2006년 <백래시> 15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환멸은 출발점이고, 실망과 패배는 다르다”고 썼다. 이제 다시 싸움을 시작했고, 그 때문에 더 높은 백래시의 파고 앞에 서 있는 한국 여성들에게 환멸을 출발로 삼을 수 있는 지혜를 나눠달라.

팔루디 여성의 권리는 하룻밤 사이에 쟁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싸워왔다. 좋은 소식은 이런 것이다. 여성운동의 걸음걸음에 세상이 아무리 강하게 반격해와도 여성들이 완전하게 밀린 적이 없다는 것. 그때마다 페미니스트의 생각은 더 강하게 뿌리내렸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말이다. 우리는 그저 포기할 수 없다.

손희정 문화평론가·<페미니즘 리부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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