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join  
고려시대 소드마스터
 너냐  hit :  33  
1.

국경선까지 내려온 여진족들을 토벌하려 임간이라는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돌격했으나

오히려 대패 하였다. 그러나 추원별가였던 척준경은 \'홀로 적진에 돌격하여 적장을 참살,

200여명의 포로들을 도로 빼앗아왔다\'




2.

윤관의 여진정벌시 석성에 의지하여 나오지않는 여진족들에게 척준경이

\'방패와 검을 든채 단기로 진격하여 석성을 기어올라 적장을 참하여 돌아왔다\'


3.

윤관과 오영청이 8천의 군사를 이끌고 가다가 5만에 여진족에게 포위를 당하여
10여명만이 남아 목숨이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 되자
\'이에 척준경이 10여명의 용사를 모아 수만군사에게 돌격해 10여명의 적군을 참살하고,

적장을 활로쏘아 죽이니 이에 힘입어 지원군이 도착하자 윤관을 구출해냈다\'


4.

여진군사 2만명이 침입해오자 모든 사람들이 성에서 수비를 해야한다 하였지만
척준경이 나서 말하기를
\"출전하지않으면 적군의 군세가 더욱 커지고 우리군의 양식은 다 할것이니 나가 싸워야합니다\"
라고 말하고
\'결사대 100여기를 이끌고 돌격하니 적장을 참하고 적군을 패퇴시켰다\'


5.



척준경이 방어하고있던 성이 여진족에게 포위되자
\'일반 군사의 헤진옷과 방패를 들어 야밤에 홀로 적진을 돌파하여

지원군을 끌고오니 여진이 패퇴하였다\'



이건 고려사절요에 실제로 나오는 내용임 ㅋㅋ


○ 2월에 임간이 여진과 정주성 밖에서 싸워 패전하였다. 과거에 내시 임언(林彦)이 출병의 논의를 주장하니 직사관(直史館) 이영(李永)이 말하기를, “무기는 흉기요, 싸움은 위험한 일이니 망동함이 옳지 않습니다. 임언이 아무 일도 없는데 군사를 일으켜 외국과 틈을 내려 함은 심히 불가합니다.\" 하니 임금이 듣지 않았다. 임간이 또 공을 세우려고 교련하지 않은 군사를 이끌고 급히 나가 싸워 패전하여 죽은 자가 태반이었다. 오직 추밀원별가(樞密院別駕) 척준경(拓俊京)이 병기ㆍ개마(介馬 갑옷을 입힌 말)를 임간에게 요청하여 적진으로 들어가 그 장수 한 사람을 베고, 사로잡혔던 두 사람을 빼앗았다. 드디어 교위(校尉) 준민(俊旻)ㆍ덕린(德麟)이 각각 적 한 사람을 쏘아 죽이니 적이 조금 퇴각하였다. 군사를 되돌리자, 적은 백여 명의 기병으로 추격하였다. 준경이 대상(大相) 인점(仁占)과 더불어 적장 두 사람을 쏘아 죽이니 적은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하여 아군은 입성할 수 있었다.





○병신일에 좌군(左軍)이 석성(石城) 아래에 이르러 여진이 모여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고, 통역 대언(戴彦)을 보내어 항복하도록 권하였더니, 여진이 말하기를, “우리가 일전으로써 승부를 결정하려고 하는데, 어찌 항복을 말하느냐.\" 하고 드디어 석성으로 들어가 항거하여 싸우는데, 화살과 돌이 빗발 같아서 군사가 나아갈 수 없었다. 윤관이 척준경에게 말하기를, “해는 기울고 사태는 급하니, 너는 장군 이관진(李冠珍)과 함께 이 성을 공격하라.\" 하니, 준경이 말하기를 \"제가 일찍이 장주(長州)에 종사(從事)로 있을 때에 죄를 범했는데, 공이 나를 장사라고 여겨 조정에 청해서 용서받게 하였으니, 오늘이야말로 준경이 목숨을 버려 은혜를 갚을 때입니다.\" 하고, 드디어 석성 아래에 이르러 갑옷을 입고 방패를 가지고서 적중에 돌입하여 추장 두서너 명을 쳐 죽이자, 이에 윤관의 휘하 군사는 좌군과 더불어 공격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 준경에게 능라(綾羅) 30필을 상주었다










○ 을축일에 윤관ㆍ오연총이 정병 8천을 거느리고 가한촌(加漢村) 병목의 작은 길로 나가니, 적이 군사를 풀숲 사이에 매복하고 있다가 윤관의 군사가 이르는 것을 기다려서 이를 급히 공격하여, 우리 군졸이 모두 무너지고 다만 10여 명이 남았다. 적이 윤관 등을 몇 겹으로 포위하였는데 연총은 화살에 맞아 형세가 매우 위급하니 척준경이 용사 10여 명을 거느리고 이를 구하려 하자, 그 아우 낭장(郞將) 준신(俊臣)이 이를 말리며 말하기를, “적진이 견고하여 깨뜨릴 수 없으니, 헛되이 죽음은 무익합니다.\" 하였다. 준경이 말하기를, “너는 돌아가 늙으신 아버지를 봉양하라. 나는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의리상 가만있을 수 없다.\" 하고 곧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적진을 뚫고 들어가 10여 명을 격살하니 최홍정ㆍ이관진(李冠珍) 등이 산골짜기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와서 구하였다. 이때에 적이 포위를 풀고 달아나므로 추격하여 36급을 베었고 윤관 등은 날이 저물어서 돌아와 영주성으로 들어갔다. 윤관이 눈물을 흘리고 울며 준경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이제부터 내 너를 마땅히 아들과 같이 보고, 너는 마땅히 나를 아버지처럼 보라.\" 하였다. 제를 받들어 준경을 합문지후(閤門祗候)로 임명하였다.










○정축일에 적의 보병ㆍ기병 2만이 영주성 남쪽에 와서 주둔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도전하였다. 윤관이 임언과 말하기를, “저들은 수가 많고 우리는 적어서 형세가 대적할 수 없으니, 다만 굳게 지켜야만 할 뿐이다.\"고 하니 준경이 말하기를, “만약 나가 싸우지 않으면, 적병은 날로 늘고 성 안에는 군량이 다 되며, 밖으로부터는 구원병이 이르지 않으면 장차 이를 어찌 할 것인가. 지난날의 승첩을 제공은 보지 않았는가. 오늘도 나가 죽기를 무릅쓰고 힘껏 싸울 테니 제공은 성에 올라가 이를 보라.\" 하고 결사대를 거느리고 성을 나가 적병과 싸워 19급을 베니 적이 패배하여 북으로 달아났다. 준경은 북과 피리를 울리며 개선하였다. 윤관 등이 누대에서 내려와 이를 맞이하여 손을 잡고 서로 절을 하였다.윤관ㆍ오연총은 이에 제장(諸將)을 거느리고 중성대도독부(中城大都督府)로 모였다. 권지승선(權知承宣) 왕자지(王字之)가 공험성(公險城 함북 회령(會寧))으로부터 군사를 거느리고 도독부에 오다가 갑자기 오랑캐의 추장 사현(史現)의 군사를 만나 이와 싸우다가 패하여 타고 있던 말을 잃었다. 준경이 곧 날랜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구하여 적을 패퇴시켜, 오랑캐의 갑옷 입힌 말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왔다.











○ 임진일에 여진의 군사 수만 명이 웅주성을 포위하였는데 최홍정이 사졸을 타이르고 격려하니, 여러 군사가 전의를 가지게 되었다. 곧 4문을 열고 일제히 나가서 분발ㆍ공격하여 크게 이겼는데, 사로잡고 벤 것이 80급, 병거(兵車) 50여 량, 중거(中車) 2백 량, 말 40필을 노획하였고, 그 외에도 노획한 무기는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이때 척준경은 성 안에 있었는데, 주수(州守)가 말하기를, “성을 지킨 지 날이 오래되어 군량이 다 되어가고, 밖으로부터의 구원병은 이르지 않았으니, 공이 만약 성을 나가 군사를 거두어 돌아와 구하지 않는다면 성 안의 군사는 살아남는 자가 없을 것이다.\" 하였다. 준경이 군사의 해진 옷을 입고 밤에 줄에 매달려 성을 내려가, 정주로 돌아가서 군사를 정돈하고 통태진(通泰鎭)을 통과하여 야등포(也等浦)로부터 길주에 이르러 적을 맞아 싸워 크게 부수니, 성 안의 사람들이 감격하여 울었다.





○ 행영병마판관 왕자지ㆍ척준경이 여진과 함주ㆍ영주 두 주에서 싸워 33급을 베었다.

○ 왕자지ㆍ척준경이 또 여진을 사지령(沙至嶺)에서 쳐 27급을 베고, 3명을 사로잡았다






ㅎㄷㄷㄷㄷㄷ

http://ko.wikipedia.org/wiki/%EC%B2%99%EC%A4%80%EA%B2%BD#.EB.A7.90.EB.85.84.EA.B3.BC_.EC.A3.BD.EC.9D.8C

위키에도있음
* 너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11-14 14:58)


prev   영국선생님들 이름만봐도 다 앎ㅇㅇㅋ 너냐
next   혼 10화 원래 대본 너냐

list


Copyright 1999-2023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