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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유지의 '기본기' 없이, '벌칙'으로 유지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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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유지의 '기본기' 없이, '벌칙'으로 유지되는 나라
[기고]고색창연한 '촌빨', 석연찮은 경범죄처벌법
박진 /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  mediaus@mediaus.co.kr
                
입력 2013.03.21  17:49:36
                                                        
중학생이 된 정땅콩양은 인생이 피곤해졌다. 불편한 교복을 입어야하고 수업시간마다 선생님이 바뀌는 혁명적 차이에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어려워진 교과목 공부도 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것은 ‘벌점’이다. 옆 반 친구한테 놀러가도 벌점, 교실에서 전자기기를 사용해도 벌점, 걸어 다니면서 군것질해도 벌점...너무 많은 벌점 때문에 당혹스럽다. 초등학교 때는 꾸지람 한번으로 넘어갔던 일들도 벌점으로 규율된다. 정땅콩양에게 벌점을 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왜, 그렇게 벌점이 많아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정땅콩양의 푸념을 듣고 있으면 한국 교육의 무능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체벌을 놓으라고 했더니 교육을 포기하는가 싶어졌다. 그러나 교육만 그렇던가...학교는 단지 벌칙과 벌점으로 유지되는 사회의 단면일 뿐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벌칙과 벌점으로 유지되는 사회의 단면

새로운 대통령의 첫 국무회의는 '핫'했다. 국무회의 결과는 빠르게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었다. 이날 ‘과다노출’은 검색어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노출에 일가를 이룬 연예인들도 “큰일났다” 떨었고 발 빠른 누리꾼들은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의 과거를 들췄다. 아무렴, 대통령 아버지 유신 시대 일이 아니었던가. 아버지와 딸이란 프레임에 딱 걸릴만한 국무회의는 그렇게 고색창연한 '촌빨'을 날렸다. 그러자 정부는 급급하게 다시 오보니, 정정해달라고 언론에 타전을 했다. 경찰청은 "과다노출 규정은 신설된 것이 아니라 처벌이 완화된 것"이고 심지어 “과다노출은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행위”라고 친절히 알려 줬다. 탱크 탑이나 노출 드레스 문제는 아니니 경거망동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담았다. 앞으로 ‘과다노출’은 즉결심판 회부 대상에서 범칙금 부과도 가능해졌으니 오히려 안심하시라고. 아참, 법원에 출석할 필요 없이 금융기관에 범칙금 5만원만 내면 더 이상 다른 처벌을 받지 않을 거라는 부연설명까지. 그런 발빠른 노력 덕분인지 언론에서도 ‘국무회의’와 ‘경범죄’와 ‘과다노출’은 사라졌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새 정부 장관들이 참석하는 첫 국무회의에 참석하여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뉴스1

틀린 말은 아니다. 이미 지난 3월에 경범죄처벌법이 개정되었다. 이번 국무회의 내용은 그에 따른 후속조치로 시행령이 마련된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따지자면 국무회의에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겠다. 그러나 석연치 않다. 정말로 석연치 않다. 물론 지난해에 개정된 경범죄처벌법부터 석연치 않았다. 사실은 경범죄처벌법 자체가 문제였다. 경범죄처벌법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조항투성이고 자의적인 법집행 가능성 때문에 이미 폐지되거나 전면 개정되어야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은 그런 문제를 가뿐히 뛰어넘어 범칙행위를 대폭 넓히고 재판 없이 경찰이 자의적 판단으로 사법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더욱 넓혔다. 과다노출처럼. 그러니까 단체가입 강요(교총가입 강요하는 교장선생님들은 큰 일 나셨다), 문신, 지문날인거부 모두 법원 거칠 필요 없이 경찰이 범칙금을 부여할 수 있게 됐다. 구걸행위를 시켰던 사람들만 처벌했다면 이제는 구걸하는 사람도 처벌할 수 있다. 스토킹처럼 괴롭힘 범죄는 범칙금 8만원을 부과해서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이런 법이 ‘과다노출’ 논쟁에 모두 숨었다가 한바탕 시끄럽게 떠들다, 다 사라진 것이다.

고색창연한 '촌빨', 석연찮은 경범죄처벌법

어쨌든 첫 국무회의였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첫 국무회의. 쪽방촌을 방문하고 시장에서 어묵을 사 먹고, 4천 원짜리 국산 손지갑을 든 대통령의, 정치인의 행동이야 모두 프로파간다에 속한다 할지라도 무너진 복지의 시대에 당선된 대통령이지 않았는가. 굶어죽는 작가가 있고, 쓰레기 더미에 방치된 어린 아이들이 있는 빌어먹을 가난의 나라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대통령의 첫 국무회의에서 겨우 빈집 들어가기, 거짓신고, 호객행위, 마시는 물 사용방해, 쓰레기 투기, 침 뱉기, 구걸행위, 근거 없는 치료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는 행위, 새치기, 과다노출, 장난전화, 못된 장난,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곳에 물건을 던지는 행위, 악기 등으로 지나치게 시끄럽게 한 행위, 노상방뇨, 문신 등을 드러내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 무단으로 등불을 끄는 행위, 광고물 무단부착 및 배포...

어느 잔소리꾼이 동네 아이들에게 늘어놓는 금지사항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열린 첫 번째 국무회의 의결 안건으로 처리된 경범죄 처벌법 시행령에서 금지하는 행위들이다. 범죄라는 무서운 말로 지칭되기에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이다. 정도를 넘으면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위들이지만 때로는 관용을, 때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사람들은 이에 적절히 대응해왔다. 그런데 왜 정부가 나서서 단속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일까? 집주인이 월세로 전환하자고 해서, 아이 맡길 곳이 없어서,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걱정인 경우는 주변에서 많이 봤지만 호객행위 때문에, 거리에 침을 하도 많이 뱉어서, 새치기가 너무 심해서 사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1)

벌칙과 벌점 밖에는 사회를 유지할 기본기는 없는가?

다시 정땅콩양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지나친 벌점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한가 싶어, 그 학교의 생활인권규정이라는 것을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무스, 젤, 염색 등 이물질 도포행위, 책, 걸상, 벽 등 낙서 행위, 실내· 외화 미구분 착용, 침이나 껌을 아무데나 뱉는 행동, 교통신호 위반 및 무단횡단, 실내에서 공놀이... 이런 행위들 밑에는 어김없이 “기타 기본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 “기타 준법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는 모두 벌점이라고 적혀있다. 기타가 할 일이 참 많다. 기타는 모호하고 포괄적이며 자의적이다. 인생을 벌칙으로 규율하겠다는, 사람을 범칙금으로 재단하겠다는 욕망은 학교나 나라나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이명박 집 권초기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불법에는 무관용으로 대처하겠다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다 떠오른다. 그래서 어떻게 됐더라? 기억나는가, 용산 참사가 있었다. 불법에 대처하겠다고 무자비하게 공권력을 투입해 경찰 1명과 철거민 5명이 죽어간 용산참사 말이다.

스케일 큰 잘못을 저지르느라 경범죄 같은 소소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청문회장의 장관 후보들. 몇 천억이든 몇 조든, 법을 바꿔가면서까지 배임과 횡령으로 세금을 포탈하는 재벌들. 그들에게 제대로 돈을 걷고 죄를 묻지 않는 정부는 생계 때문에 암표를 파는 서민들에게 범칙금을 삥뜯어 복지 예산을 채우려는 걸까. 그러한 깨알 같은 의도야, 번번이 경험하고 있으니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아직은 상점이 더 많아 벌점 걱정은 안 되지만, 왜 그토록 벌점이 많아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정땅콩양처럼, 벌점과 범칙금말고는 사회를 유지할 기본기도 없는 이 앙상한 나라에 사는 부끄러움이다. 배임이나 횡령 포탈보다 경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더 높아진 내가 늘, 왜 더 많이 부끄러운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1)의 내용은 인권단체연석회의 등의 경범죄 처벌법 폐지 국가인권위원회 민원 기회자회견을 참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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