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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화해·용서하라는 말은 굉장히 위험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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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화해·용서하라는 말은 굉장히 위험한 거야”
등록 : 2012.04.20 21:28수정 : 2012.04.20 21:48툴바메뉴


“무기를 손에 들고 어떻게 사랑을 해. 생명·평화의 화두가 집약된 강정마을은 반드시 지켜야 돼.” 병상에 누워 있었지만 문정현 신부의 마음은 여전히 강정마을 바다 앞에 있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광주인권상’ 받는 문정현 신부 인터뷰


▶ ‘길 위의 신부’ 문정현. 그의 왼쪽 무릎에는 수술 자국이 선명합니다. 엉터리 인혁당 사건으로 죽음을 당한 송상진씨의 주검을 지키려다 얻은 상처지요. 이 수술 자국 외에도 온통 찢긴 상처와 검은 멍 자국이 가득합니다. 평택 대추리에서, 서울 용산참사 현장에서, 제주 강정마을에서… 헤아리기 힘든 많은 곳들로 “한치의 유보도 없이” 뛰어들었다가 얻은 ‘훈장’이지요. 그의 두 다리는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의 증거입니다.

총선에 바꾸자, 대선에 바꾸자
이런 말 제일 싫어
지금 죽을 각오로 싸워야 돼
지더라도 계속 싸워야 돼

강정 평화운동가들 잡혀간 건
참 잘한 일이야
우린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걸 보여줬잖아

“하느님 살려주세요 할 새도 없이” 새하얀 제의가 펄럭이다 풀썩 꺼졌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도 들리지 않고” 까무룩 의식이 꺼졌다. 지난 6일 제주 강정포구 서방파제, 7m 높이 테트라포드(4개 뿔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문정현 신부가 추락했다. 부활절을 이틀 앞둔 성금요일 미사 중이었다. 해군제주기지사업단 정문에서 멧부리를 거쳐, 2007년부터 계속돼온 지난한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의 장소 하나하나를 ‘십자가의 길’ 삼아 밟았고, 마지막 14처 서방파제에서 기도를 막 끝낸 참이었다. “예수가 무덤에서 부활했듯, 생명과 평화의 상징 구럼비도 살아나길 기원하며 평화활동가 두 사람이 구럼비로 헤엄쳐 넘어가려고 하던 찰나” 해양경찰서 직원이 저지하고 나섰다. 문 신부는 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대치하다 테트라포드 아래로 떨어졌다.

역사의 데자뷔인가. 1975년 4월9일, 37년 전 그 봄날,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억울한 사형을 당하고, 주검마저 빼앗겼던 그날도 문 신부는 똑같은 죽음의 공포를 보았다. 송상진씨의 주검을 지키려고 문 신부는 “고민할 틈도 없이 어느새인가 크레인 위에 올라섰고” 그를 끌어내려던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툭’ 하고 추락했다. 무릎뼈가 으스러진 이 사고로 5급 장애인이 됐고, 평생 지팡이를 짚고 살아야 했다.

표피 저 밑까지 온통 새까말 것 같은 그을린 얼굴로 병상에 누운 문정현 신부를 만나기 위해 지난 13~14일 제주대학병원을 찾았다. 북적대는 병실엔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있었다. “이 친구 이러고 있으니 아주 성스러워 보이네. 길거리 돌아다닐 땐 천상 밥 얻으러 다니는 노숙자 같더니.” 웃음 섞인 농담부터 나왔다. 김병상 신부(몬시뇰)다. 그 뒤로 함세웅·안충석·황상근 신부의 모습이 보였다. “갈 길이 달라져 서로 헤어졌다 붙었다가 했지만, 신학교 시절부터 어울려다니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함께 만들었던 친구들”이란다. “아, 이 부류만 만나면 개똥 취급을 받는다니까.” 문 신부가 벙글 웃음을 지으며 기분 좋게 받아쳤다. 원로신부들은 문 신부의 추락 사고와 관련해 “국가 공권력의 폭력과 무례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기자회견을 막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병실에는 원로신부들을 비롯해 강정마을 주민은 물론 평화운동가와 종교인, 정치인, 문인 등 그의 쾌유를 비는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4·11 총선 직후인지라 방문객들의 대화 내용은 선거 결과를 평가하는 얘기로 이어지곤 했다.


총선 직후라 그런지 선거 얘기가 많네요. 이번 총선 어떻게 보셨어요?

“강정 해군기지 문제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에 대해선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똑같아. ‘이명박근혜’라고 불러도 될 정도야. 그래서 이들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통합진보당이 20석이라도 얻어야 원내에서 힘이 있겠다 싶었지. 너무 죄스러운 얘기지만, 내 성향이야 녹색당이지만 녹색당이나 진보신당도 (야권과 연대해) 힘을 합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지. (선거 결과가 나온)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렇게 안 했어도 될 뻔했어.”

강정 해군기지 등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특히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절망하는 것 같아요.

“그게 병이야! 내가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뭐냐면 ‘총선에 가서…, 대선에 가서…(바꾸겠다)’라는 거야. 나는 선거(결과)에 매달리지 않아. 기대하는 거야 좋지만 지금 최선을 다해서 죽을 각오로, 감옥 갈 각오 하고, 체포될 각오 하고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얻을 수도 있어. 더 많이 싸워야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거야. 정치인들이 언제 먼저 우리를 거들떠보기나 했는 줄 알아. 뭉쳐서 이만큼이라도 싸우니까 선거 때나마 곁눈질이라도 해주는 거야. 지금까지 쭉 그랬어. (총선에서 진 건) 우리가 덜 싸웠기 때문이야. 더 싸워야 해.”

신부님은 투표 못 하셨겠어요?

“못했어. 투표하러 (전북 군산 옥봉리 집에) 가려고 비행기표까지 다 사놨는데, 그날(6일) 난리가 난 거지.”

이렇게 누워 계신 거, 정말 오랜만이죠?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 나가야지. 빨리 강정으로 가고 싶어. 움직일 만하면 바로 가야지.”

병상에서도 온통 강정마을 걱정이었다. 인터뷰 도중 전날 우근민 제주도지사를 면담한 홍기룡 제주군사기지범대위 위원장이 찾아왔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제주도 민주통합당 의원 3명이 당선됐으니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라고 촉구했다”는 얘기를 전한다. 이에 대한 우 지사의 반응은 “법률적 부분을 검토해보고 가능하면 하겠다”는 것. “(여당이 승리한) 총선 결과 때문인지 너무 계산을 하는 것 같더라”는 말이 덧붙었다.

우리 사회에 어려운 곳은 널려 있잖아요. 신부님은 왜 유독 강정마을에 오시게 됐나요?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오로지 강정마을 주민들 때문이야. 빼앗기고 탄압받고 소외된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거야. 나는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야. 그 양반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 그런데 지금 힘이 빠질 대로 빠졌어. 그 사람 얼굴이 강정마을 주민들의 얼굴이야.”

강정마을 싸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강정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뭘까요?

“4·3이란 아픔을 겪은데다, 세계에서 인정하는 생물다양성을 갖춘 천혜의 자연 제주도에는 그야말로 생명·평화의 화두가 집약돼 있어. 요한 바오로 2세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무기를 손에 들고 사랑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무기 없이는 안보가 없다’고 했어.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가 군비 경쟁을 통해 안보를 얻겠다는 건, 뱁새가 황새 따라가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야. 이 돈도 힘도 없는 나라를 생명과 평화를 존중하는, 그래서 도덕적으로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어야 해. 그럴 때 강대국들이 함부로 못하는 거야. 그런데 잘못된 안보논리를 갖고 이 화두에 정반대되는 해군기지를 만들겠다는데 결단코 막아야 하는 것 아니겠어?”

당장 강정을 지킬 수 있는 ‘물리적 힘’을 뺏을 수 있는 총선에서 졌어요.

“그래, 단기적으로는 졌지. 그렇지만 유신을 생각해봐. 박정희 독재가 18년이야. 유신이 무너질 거라고 상상이나 했어? 그런데 무너지잖아. 10·26으로 박정희가 죽었을 땐 민주화운동이 다 이뤄진 줄 알았어. 그런데 12·12 사태로 더 큰 악마가 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어. 기대했던 시간이 왔다고 이뤄진 일은 아무것도 없어. 확실한 건, 지금 막혀 있다고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뿐이야. 오두희 등 강정 평화운동가들이 12일 공사 재개에 항의하다 연행된 건 참 잘한 일이야. 비록 잡혀가지만 우리는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것, 그걸 보여줘야 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 용납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감춰진 진실과 정의는 언젠가는 드러난다’ 그 길을 바라고 가는 거야.”

‘길 위의 신부’로 살아온 세월이 거의 40년이다. 처음 거리에 뛰어들었을 땐(1974년 민청학련 배후로 지학순 주교가 체포됐을 때) “감히 주교를 연행해”라는 수준의 사회의식을 지녔던 그는 “민청학련 관련자 가운데서도 가장 힘이 없는” 인혁당 연루자들을 만나면서 독재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기로 의식을 확장했다.

전북 장수군 장계성당과 전북 익산 창인동성당에선 농민과 노동자들과 어우러지면서 지금 여기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왔다. 군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평화바람’ 네 식구 중에서 가장 먼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배운 것도 최고령자인 문 신부였다. “젊은 사람들이 뭐에 관심이 있는지 호기심이 되게 많으세요.” 함께 생활하는 딸기씨의 얘기다. 세상 변화에 호흡하면서 문 신부의 생명·평화의 가치는 풍성해졌고, 예수는 안전한 교회 안이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이들, 빼앗기고 쫓겨난 이들 속에 있다는 믿음은 단단해졌다.

문 신부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부용산>이었다.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이 노래만 들으면 두 사람이 생각나. 노조 운동 하다가 암으로 죽은 박복실(태창메리야쓰 노조 지부장)이하고, 명동성당에서 조국통일을 외치며 투신한 제자 조성만. 특히 성만이가 나한테 준 영향은 엄청나게 커. 그때가 1988년이었는데, 대학교 2학년짜리 아이가 ‘남북이 올림픽 공동참여하자’고 했지. 그 아이 때문에 남북 분단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됐어. 그래서 (1989년 임수경과 함께) 문규현 신부를 북에 파견하자는 생각도 하게 된 거고, 훗날 군산 미군기지 문제 등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에 대한 문제의식도 갖게 됐지. 나라는 사람은 결코 나 혼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그게 강정까지 오게 만든 거야.”

더불어 왔지만 그 길은 패배의 연속이었다. 인혁당 사건은 ‘독재정권에 의한 무고한 살해’라는 게 밝혀지기까지 32년이 걸렸다. 효순이·미선이의 억울함 죽음 뒤 촛불을 높이 들고 소파 개정을 외쳤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이라크 파병도 결국은 이뤄졌고, 평택 대추리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야 했다. 용산 철거민들은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문정현 신부(가운데)가 지난 8일 제주도 서귀포시 해군기지 건설 현장 앞에서 구럼비 바위 발파 작업이 시작되자 울부짖고 있다. 서귀포/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농민, 노동자들 싸움은
대개 빼앗긴 걸 찾자는 거
시혜를 베풀라는 게 아니거든
거기 대고 화해, 용서해라?
의로운 세상을 늦출 뿐이지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건
연극무대에 서는 거야
좌중을 휘어잡을 자신 있거든

2003년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을 제외하면, 여태껏 별로 이겨본 적이 없으신 것 같아요.

“부안 싸움도 이긴 게 아냐. 결국 핵폐기장이 경주로 갔잖아. 부안에서 안 됐다고 괜찮은 게 아니지. 그건 ‘우리집 앞마당만 아니면 괜찮다’는 ‘님비’(NIMBY)야, 님비. 핵의 위험성 문제를 따지고, 끝까지 책임졌어야 했어. 그런데 경주로 넘어갔을 때 우리가 뭘 했어? 아무것도 안 했잖아. (평택) 대추리도 그렇고, 용산도 그렇고….”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이 실패로 끝난 이후 많이 힘들어하신 걸로 기억해요.

“대추리라는 손바닥만한 곳에 1만명이 넘는 경찰, 공병대 군인 1500명, 용역 900명 등 엄청난 병력이 투입됐지. 헬리콥터가 저공비행으로 날아들고, 새까맣게 많은 병력과 중장비 앞세워 쳐들어오는데, 기가 질려버렸지. 주민들이 거기서 딱 주저앉아버린 거야. 그러니 어떻게 더 싸움을 해. 그렇지만 우리 주장은 지금도 유효해.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밀어붙인 노무현 정권은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지. 이게 그 사람들 원죄야.”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미군기지가 수도 서울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 ‘국익이다’라는 논리도 폈잖아요.

“(목소리 높아지며) 참, 나쁜 놈들이야! 아니, 서울에 있으나 평택에 있으나 뭐가 그리 다른가! 게다가 우리나라 수도에 외국 군대가 있어서 안 된다는 것 때문에 (미국이) 서울을 비워준 건가? 양심을 속이는 소리지. 정부는 미국에서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국익 때문에 한다고 했지만, 이게 다 국가 차원의 거짓말이야. 미군기지 이전은 우리(안보)하고는 전혀 상관없어. 다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때문에 저희들 편하자고 그런 거잖아. 거기서 아무 이유 없이 3번이나 쫓겨난 대추리 주민들은 또 어떻고!”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과거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래도 이명박 정권보다는 낫겠지 하면서, (이번에) 야권통합으로 정권교체를 해주길 기대했지만, 까놓고 보면 그래, 한명숙(민주통합당 전 대표) 같은 사람이 국무총리 할 때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도 한 거 아냐. 그랬으면 그 원죄를 고백해야지. 그래야 다시 시작하는 의미가 있는 거야. 그런데 그걸 안 하더라고. 그러니까 발목을 되잡히잖아. 박근혜(새누리당 비대위원장)가 마음 놓고 ‘한-미 에프티에이 니들이 먼저 한 거 아니냐, 제주 해군기지도 니들이 입안한 거다’ 이러는 거잖아. 아, 그러면 ‘우리가 하려던 에프티에이는, 해군기지는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이런 게 아니었다, 이 정도였다면 벌써 폐기했을 것이다’ 그렇게 딱 부러지게 치고 나가야 하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되잡히고 있잖아. 이를 뚫고 나갈 정치적 수완도, 능력도 없는 거지.”

믿던 사람한테도 실망하고, 계속 지기만 하는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는 뭐죠?

“그건 내가 믿는 ‘부활 사상’ 때문이야. 죽은 듯하지만 반드시 살아난다는. 용산만 봐도 그래. (철거민 등이) 재판에서 중형받고 그 고생을 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추악함이나 재개발 논리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뭇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지 드러나고 있잖아. 이 희생은 헛되지 않은 거야. 효순이·미선이의 죽음, 평택 대추리 문제를 통해서도 한-미 관계의 불평등함이 얼마나 크게 드러났어? 구럼비 바위가 지금 저렇게 깨졌다고 해서 싸움을 멈출 수는 없어. 그 바위가 이렇게 파괴돼 있는 모습 자체로 군사주의라는 게 얼마나 잔혹한지 교훈을 남길 수 있는 거야. 마치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아우슈비츠가 그대로 남아서 역사의 교훈이 되고, 평화에 대한 열망을 키우는 것처럼. 그게 바로 생명과 평화의 길이고 진리와 정의의 길이야.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갔단 말이야. 하지만 거기에 이르지 못하고 죽었어. 그렇다고 해서 가나안 땅을 찾아갔던 일이 가치가 없는 건가? 그건 아니잖아.”

인터뷰 이틀 뒤인 지난 17일 5·18기념재단은 “1970년대의 개발독재 시대에서부터 1980년대의 군사정권을 거쳐 지금의 제주 강정마을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사제로서 부당한 국가권력에 저항하고 고통받고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위로하는 동시에 생명과 평화운동을 온몸으로 전개한 성직자로서의 일관된 삶을 보여주고 있다”며 문 신부를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결정했다. 샤나나 구스망 전 동티모르 대통령 등 주로 국외 민주화 인사들에게 이 상이 돌아갔던 점을 생각하면, 국내의 한 개인이 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인도의 인권활동가 비나야크 센 등 광주인권상 역대 수상자 8명이 지난달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제주도 해군기지의 건설은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강정마을 문제가 인권·평화의 문제로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는 게 반영된 것이다. 재단은 수상자 결정문에 “그의 삶은 저항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와 인권, 생명과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는 점도 이유로 추가했다. 하지만 문 신부에게 적대적인 이들은 똑같은 이유로 그를 ‘깡패 신부’ ‘전문 시위꾼’이라고 몰아세운다. 타협할 줄 모르는 태도, 때로는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과격하게 분노하는 모습 때문일 터.

종교라고 하면 흔히들 화해와 용서를 얘기하잖아요. 신부님은 화해와 용서보다는 분노하는 신부의 이미지가 더 강한 거 같아요. 신부님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입니까?

“종교는 오늘의 문제야. 그런데 내 경험상 화해라는 게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노동자, 농민의 싸움은 대개 빼앗긴 걸 찾자는 거야. 결코 시혜를 베풀어달라고 하는 게 아니거든. 자기가 일한 대가나 인간의 존엄성을 뺏겼을 땐 화가 나는 게 당연해. 이건 의로운 분노지. 이걸 찾겠다고 싸우는데 무조건 화해해라, 용서해라 하는 건 의로움이 이뤄지는 시간만 연장시킬 뿐이야. 무조건 화해하라, 용서하라는 말은 굉장히 위험한 거야.”

인혁당 사건에 대해선 어떤가요? 32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잖아요.

“아직도 분노가 남아 있지. 그 가족들의 맘 상태가 어떨 것 같아. 신문에 박정희 얼굴이라도 나오면 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손가락으로 눈을 파버려. 32년 만에 명예도 회복됐고, 보상도 받았지만 그걸로 안 풀어지는 거야.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여전히 저러고 있는데, 어떻게 용서를 해. 박근혜는 아직 한 번도 인혁당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안 했어. 진짜로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할 때, 그때 관용도 베풀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고 무작정 용서해봤자, 되레 ‘용서받았다’ 이용만 한다고.”

지금도 인혁당 사건 때랑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감을 잃는 것 같아요.

“(호통 치며) 아, 인간, 지가 뭔데. 하찮은 버러지랑 다를 바 없어. 그냥 최선을 다해서 살다가 죽는 거, 그뿐이야. 하나의 밀알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또 썩어서 거름이 되는 것, 자연은 다 그렇게 하고 있어. 밀알 하나로 썩어 거름이 됐다는 게 많은 이들에게 동의가 될 때, 그게 힘이 돼서 세상 변화가 오는 거야. 그러니까 성급할 수가 없어. 인간 제까짓 게 뭔데 세상을 다 바꾸려고 들어. 혁명이야 있을 수 있지. 그렇지만 그것도 다 (때가) 무르익은 다음에 어떤 계기를 만나 이뤄지는 거야. 그러니 강정마을 주민들도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신부님께서 꿈꾸는 ‘가나안’은 어떤 모습인가요?

“남북이 하나로 통일된 세상. 광주에서 기차 타고 평양역에서 내릴 수 있고, 금강산에 가서 휴양할 수 있는 그런 세상. 또 지역갈등 없는 세상. 나는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지만 친가는 경상도 진주에서, 외가는 충청도에서 왔어. 경상도와 충청도의 만남으로 태어난 나를 전라도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 참 웃기지 않아? 평양에도 가보니 같은 문씨가 많아. 하는 짓도 어찌나 똑같은지…앉아서 코 푸는 것까지 똑같더라고. 갈라질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고.”

‘그런 세상이 오면 문 신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도 해. 그래도 꼭 해보고 싶은 건 하나 있는데…. 연극 무대에 서는 거야. 좋은 대본 하나 만나면 해볼 만한 것 같은데. 내가 좌중을 휘어잡고 눈물을 쏙 뽑을 자신이 있다고. (하하)”

제주/글·사진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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