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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유머감각 / 문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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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크리틱] 어떤 유머감각 / 문강형준
등록 : 2012.11.23 19:10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오늘날 ‘유머 없는 사람’은 ‘매력 없는 사람’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유머감각은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는 강력한 무기다. 진지하다 못해 엄숙한 사람을 높이 샀던 과거의 문화는 사라지고, 이제는 가볍고 유쾌한 사람이 인기를 얻는다. 코미디언 출신의 일부 연예인들이 예능프로그램을 장악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그중 일부는 높은 수입과 더불어 사회적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유머’ 혹은 ‘웃음’이 인기의 조건이 된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신분에 의한 지배가 존재하는 곳, 상하의 서열관계가 중요한 곳에서는 언제나 웃음을 경망스럽고 천한 것으로 취급했다. 유학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에 웃음을 담당했던 광대들은 최하층 천민이었으며, 그들의 공연 역시 그렇게 다루어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연극 등의 공연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존 질서를 풍자하는 민중의 웃음까지 즐기지는 않았다. 당시의 모든 대중 연극은 혹독한 검열을 통과해야만 했다.

웃음은 천한 것이었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엄격한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플라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웃음을 너무나 좋아해서는 안 될 것이네. 격한 웃음에 빠져드는 것이야말로 일반적으로 격한 변화를 낳는 중개자 역할을 하게 마련이거든.”

‘격한 웃음’이 ‘격한 변화’를 낳는다는 지적은 ‘유머’라는 말의 어원과도 연관된다. 그리스어로 ‘umor’란 인간의 몸에 흐르는 네 가지 ‘체액’(담즙질, 우울질, 점액질, 다혈질)을 뜻했는데, 그리스인들은 이 체액의 변화가 사람의 기질, 기분, 건강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웃음을 주는 행위는 기질과 기분, 건강에 영향을 주는 일, 곧 사람의 신체를 바꾸는 근본적 변화인 것이다. ‘정치체’(body politic)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신체의 변화와 정치적 변화는 밀접하다. <헨리 4세>에서 왕자 헨리가 왕이 되기로 결심하자마자 폴스타프 패거리를 내쳐야 했던 것, <장미의 이름>에서 몰래 웃음을 탐하는 수사들이 죽어야 했던 것, <제인 에어>에서 ‘미친 여자’의 웃음이 ‘다락방’에 가두어져야만 했던 것, 조선시대 여자들의 웃음이 담장을 넘어서는 안 되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군대에서 이등병들의 웃음을 금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쪼개지 마!”). 낮은 신분이 ‘쪼개기’ 시작할 때 진짜 ‘쪼개지는’ 것은 권위 자체다.

웃음과 유머는 역설적으로 억압적인 사회에서 비로소 자신의 정치적 역할을 가장 훌륭히 수행한다. 웃음은 민중이 억압에 대해 취하는 가장 소극적인 저항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대중의 지배’를 요체로 삼는 민주주의 사회일수록 지배적 질서의 권위를 쪼개는 웃음과 유머에 관대하다. 민주주의의 ‘표현의 자유’는 그 사회가 금기시하는 것까지도 표현하는 자유를 인정하기에 위대한 것이다. 북한 트위터 계정의 글을 리트위트한 행위로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어 기소되고, 결국 며칠 전 유죄가 선고된 박정근씨의 사례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까지 인정되지 않는 유머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북한 찬양 글을 그대로 리트위트한 행위 속에 담긴 ‘아이러니’가 무언지를 ‘국가보안’을 책임지는 근엄한 플라톤주의자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겉의 의미와 속의 의미가 다른 데서 생겨나는 아이러니야말로 고급 유머의 핵심 기법임을 모르는 법 집행자들의 수준은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북한보다 그리 나을 게 없어 보인다. 글로벌한 현상이 된 싸이의 원초적인 ‘코믹’ 댄스곡에는 훈장을 수여하면서, 그보다 수준 높은 박정근씨의 ‘유머’에는 유죄를 선고하는 엘리트들의 뒤틀린 유머감각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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