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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속기록① 새로운 좌파정당, 왜 녹색이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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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속기록① 새로운 좌파정당, 왜 녹색이어야 하나
2012/09/13 15:40 입력    
좌파정당추진위 네 번째 토론회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은 왜, 어떤 녹색정당이어야 할까?"에 많은 당원들이 관심을 갖고 영상이나 속기록을 요청했던 바 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속기록을 세 번에 나누어 <정치신문 R>에 게재합니다. 녹취 속기작업에 수고해주신 경남도당 양솔규 당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진보좌파정당 추진위 연속토론④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은 왜, 어떤 녹색정당이어야 할까?”


일시 : 2012년 8월31일
장소 : 금속노조 4층 2회의실

발제 :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위의장 - 새로운 진보좌파정당과 녹색사회주의의 길
토론1 : 서형원 녹색당 과천시의원 - 현실 녹색정치의 평가와 전망
토론2 : 이명희 진보신당 경기도당 녹색위원장 - 지역/생활정치와 녹색정치
토론3 : 배현철 금속노조 교육국장 - 노동정치에서 바라본 녹색정치


김현우 : 진보좌파정당이 어떤 내용과 어떤 틀거리를 가져야 될 것인가, 녹색정치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탄없이 나눠보는 시간이 될 거 같습니다. 그 부분에 가장 적절한,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주실 분들을 모셨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장석준 의장의 발제문은 이 토론회를 위해서 따로 쓰여진 것은 아니고, <지금 여기의 진보>라는 최근에 나온 책에 실렸던 글입니다. 오늘 주제와 굉장히 일치하고 있어서 이 글을 중심으로 발제하고 진보좌파정당의 녹색정치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야 될 것인가에 대해 조금만 더 덧붙이면 부족함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30분 정도 발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녹색사회주의 낯설지 않다: 대중적 흐름으로 정착된 곳도 있어

장석준 : 제가 말씀드릴 내용들이 지나치게 큰 얘기로 들릴 수 있는 얘기입니다. 토론자로 나오신 분들이 우리가 출발해야 할 작은 실천들에 대해 풍부한 비전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잘 채워주실거 같고요. 그리고 큰 이야기가 명확히 서야만 작은 이야기도 풍부하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한 토론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녹색사회주의라고 하면, 생태 사회주의랑 다른 말은 아니고요. 같은 의미인데. 아직은 식자층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오간 지 20년 정도 한국에서 되었지만, 대중적으로는 낯선 이야기죠. 전 지구적으로 살펴보면 꼭 낯선 것만은 아닙니다. 이 지구의 어떤 곳에서는 대중적 흐름으로 정착되어 있구요. 가령 올해 그리스 총선을 통해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급진좌파연합이라는 시리자라는 정치세력의 로고, 엠블럼을 보면 세 개의 깃발로 되어 있습니다. 적색, 보라색, 녹색. 과거 통합하기 전 사회당 로고가 비슷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적색은 당연히 사회주의를 뜻하고요. 보라색은 여성주의, 녹색은 생태주의. 어떻게 보면 급진좌파연합이 일종의 녹색좌파, 녹색사회주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이태리에서. 이태리가 내년에 총선이 있는데. 총선에 총리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며칠전에 발표한, 이태리 남부 풀리아 주의 주지사가 있습니다. 게이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니키 밴돌라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속한 정당은 원외정당이에요. 우리랑 거의 신세가 다를 바 없습니다. 정당 이름이, <좌파, 생태, 자유>입니다. 또 다른 녹색사회주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고요. 심지어 집권한 세력도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같은 경우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일어나면서, 가장 처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나라입니다. 2009년에 일종의 준혁명 사태가 있었고, 그러고 나서 곧바로 실시된 총선에서 사회민주연합의 연립정부가 들어섰는데, 연정파트너가 <좌파녹색운동>이라는, 당명 자체부터 녹색사회주의를 분명히 하는 곳입니다.

이들의 당 홈페이지에 가봐도, 자기들 이념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민주적 사회주의, 여성주의, 생태주의. 이러한 세력들이 한국 바깥에서는 이미 상당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면서 자기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죠. 이 얘기를 다르게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녹색사회주의가 아니라, 녹색만을 내건 정치세력, 또는 고전적인, 전통적인 사회주의만을 내건 정치세력이 지금 어떤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가. 그렇게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가령 독일녹색당 같은 경우 여전히 녹색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재 독일녹색당이 어떤 사회경제정책을 대변하고 있느냐. 사실은 상당히 상층 화이트칼라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상층 화이트칼라 사람들은 사회적 관심에 있어서는 일정하게 진보적이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데는 상당히..., 실제 이들의 정책이 나온거 보면은. 독일에 자유민주당(FDP)이라고 있습니다. 우파 소수정당인데, 기독교민주당보다 훨씬 더 신자유주의적인 정당. 그런데 어떤 측면에서 보면 독일녹색당과 자유민주당이 사회경제정책에서 수렴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사회주의만을 내건 정치세력 중에서, 가령 올해 집권한 프랑스 사회당이 있습니다. 지금 산업부 장관이 아르노 몽테부르라는 사람인데. 몽테부르라는 사람은 작년 사회당 대선후보 경선할 때 가장 왼쪽 입장을 취하면서 사회당이 금융자본에 대해서 좀 더 좌경화정책을 채택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최근 뉴스에 오르내리는데. 그 이유는, 올랑드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 중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핵발전 축소였는데. 몽테부르 산업부장관이 정부 내 인사들 중에서 이 공약을 폐기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프랑스 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중요한 산업이다, 산업부 장관에 취임하고 보니까 그렇다, 그 공약을 폐기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는데요. 희극이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하죠. 프랑스 사회주의가 결국 핵발전에 기반하는 사회주의인 거죠. 미테랑 정부 시절에도 핵실험에 반대하는 그린피스 선박을 침몰시켰던게 프랑스 사회당 정부였는데요. 이게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녹색이지 않은 사회주의의 한계를 말해주고 있는거 같고요. 이런 점에서 녹색사회주의가 현재적으로 고민해야 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드립니다.


독일 녹색당과 프랑스 사회당: 녹색과 적색이 만나지 않을 때의 한계 보여줘

이걸 조금 더 이론적으로 짚어보면, 결국 우리의 시대가 위기의 시대인데, 위기의 두 측면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는 지구 자본주의의 위기이고, 하나는 지구 생태계의 위기. 그런데 이게 병렬적으로 두 개의 위기가 있는게 아니라, 두 개가 서로 엇물려 있는 것이죠. 역사적으로 엇물려 있고. 따라서 이 위기의 어느 한 측면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전체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또한 전체에 대응하지 않았을 경우에 나타나는 편향들은 이미 많이 보고 있습니다. 가령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인식 없이 지구 생태계 위기만을 이야기하는 진영에서의 대표적인 대안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입니다. 취지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라고 여겨지지만, 이 정책이 채택되었을 때 효과는 금융시장이 확대되는 겁니다. 금융시장을 통해서 환경위기를 극복하겠다 이런 발상에서 이런 대안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건 대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또 하나, 지구생태계에 대한 인식 없이 자본주의 위기만을 인식했을 때 나타나는 대안, 지금 나타나고 있는 여러 케인즈주의적 대안이 그것이죠. 경기 확장하려면 공공투자를 해야 되는데. 물론 녹색뉴딜이라는 식으로 공공투자의 방향을 일정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1930년대식이죠. 1930년대에 뭘 했습니까? 댐 만들었잖아요. 그러한 식의 공공투자를 얘기하는 대안이 나오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지구생태계의 위기와 자본주의 위기 ‘전반’에 대한 대응이 녹색사회주의의 출발점은 결국 그것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세 가지 정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세 가지 내용만 있다기 보다는 제 역량상, 시간한계상 강조하고 싶은 거 세 개만 말씀드리면요.


왜 녹색사회주의인가 1. 분권적 지역자립형 사회 지향

첫 번째, 기존 사회주의와 가장 커다란 차이는 무엇인가? 저는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생산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라고 봅니다. 기존 사회주의의 출발점은 뭐냐하면, 사실은 러다이트 운동에 대한 자기비판으로 출발한게 근대 사회주의입니다. 자본주의 등장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첫 번째 반응은 기계를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근대 사회주의는 기계를 부수는 게 아니라, 그 기계를 노동자의 것으로 만들어야 된다. 저는 그게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보거든요. 저는 그게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보거든요. 그리고 그게 결코 틀린 것은 아니었고, 지금도 100% 틀렸다고 할 수 없는 현실적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생산력을 그대로 대안세력이 자기 것으로 전취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냐? 결코 그렇지 않다. 사실은 계급투쟁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자본주의에서의 기술은 ‘노동절약형 기술’이기 때문에, 기본 구조 자체가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그대로 계승할 수 있느냐. 그런데 역사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은 그대로 계승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표적인 사람이 누굽니까? 사실 레닌이거든요. 레닌이 사회주의 건설할 때 미국에서 테일러주의를 배워와야된다고 했던 것처럼. 이런 역사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이걸 사실 가장 날카롭게 문제제기 했던 사람이 프랑스의, 원래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죠, 앙드레 고르(Andre Gorz)입니다.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이라는 책입니다. 상당히 뭐라고 할까요? 이단적인. 문제제기가 이거죠. 노동자가 핵발전을 그대로 물려받고서는 사회주의가 될 수 없다.

저는 여기서 생산력의 핵심이 뭐니뭐니해도 결국은 에너지 문제라고 봅니다. 다른 여러 기술의 문제, 도시집중의 문제,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핵심은 에너지다. 왜냐? 자본주의의 출발이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 산업자본주의가 출발한 게 석탄이라는 광물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영국에서 출발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역사가들의 결론이거든요. 지금 현재 에너지 시스템은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 그리고 둘의 공통점은 고도의 중앙집권적인 에너지 생산이 가능하다. 이게 현재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지요. 자본가들이 만들어 놓은 현 사회가 아닌 다른 대안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세력이라면, 가장 중심적으로 가장 먼저 고민해야 될 사회변화의 첫 번째 축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게 대안이 뭐냐 했을 때 많은 분들이 태양에너지를 얘기하거든요. 그런데 태양에너지의 문제가 뭐냐하면, 화석에너지와 달리 고도의 중앙집중적인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거죠. 물론 사하라 사막에서 생산해서 유럽으로 가져오겠다는 구상도 있지만. 그건 유럽의 독특한 제국주의적 전통인거 같고. 다른 사회에서 모든 지구 표면 위에서 가능하려면, 자기 지역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는 자기 지역에서 생산할 수밖에 없는 게 태양에너지의 기본적인 속성이고요. 그렇게 되면 결국 대안사회라는게 고도의 분권적 사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도의 지역 자립형 사회이고요. 이것은 근대 자본주의하고도 다른 사회모습일 뿐만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하고 경쟁했던 20세기 사회주의하고도 다른 모습이죠.

그러면 어떻게 이행을 할 것인가? 현재의 고도의 중앙집중화된 자본주의에서 분권화된 사회주의로 이행할 것인가. 저는 시장적인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시장적 방식은 결국 기업에게 맡겨놓는 것인데. 사실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앙집중화된 게 현대의 대기업이거든요. 더구나 시장적 방식을 취한다 했을 때, 결국 에너지 산업에서도 보이지만, 왜곡될 수밖에 없고. 결국은 다시금 계획이라는 문제가 제출될 수밖에 없다고 봐요. 비시장적인 경제결정으로서의 계획.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계획은 다 중앙집권적인 계획이죠. 1930년대 소련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따라잡기 위해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취했던, 그런 경제활동의 결과로 정착된 제도적 패키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중앙집권적 계획인데. 참여분권형 사회를 중앙집중형 방식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거죠. 비시장적이기는 해야 되는데, 그 방식 자체도 참여분권형적인 방식이어야죠.

참여분권형적인 사회를 중앙집중형 계획으로 만들려는 역사적인 시도가 있었습니다. 20세기 말에. 그게 바로 그 유명한 문화대혁명이죠. 엄청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는 거고. 그게 조그만 형태로, 그리고 가장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나타났던 거는, 모택동주의를 가장 극악한 방식으로 실천했던 캄보디아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생태적인 실험이었어요. 겉모습만 보면. 도시의 과잉된 인구를 농촌에 돌아가게 한다는 건데. 그래서 그 당시에 UN 산하 기구들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보고서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강제로 이주시킨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학살했고. 결국은 에너지 전환을 출발점으로 해서 참여분권형 사회주의로 나아간다고 했을 때, 비시장적인 경제결정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면서 그것은 또한 비스탈린주의적인 참여분권형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 녹색사회주의라고 얘기했을 때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노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녹색사회주의인가 2. 국가주의의 한계를 극복해야

두 번째는 그렇기 때문에 녹색사회주의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참된 의미의 사회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이제까지의 사회주의는 사실 국가주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시장, 혹은 자본에 대해서 사회가 자기통치하는 사회를 만들겠다 했지만 결국 그 사회라는 것은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강력한 국가에 의해서 되어 왔습니다. 이건 사회민주주의도 마찬가지였고, 스탈린주의도 마찬가지였고,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라는게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으려면 원래 문제제기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 중심의 사회주의’. 가령, 에릭 올린 라이트라는 미국의 사회주의 학자 같은 경우에는 ‘사회중심 사회주의’라는 말까지 쓰고 있는데요. 저는 이게 녹색의 또다른 의미와 만난다고 봅니다. 녹색의 또다른 의미는 사실은 생태 뿐만 아니라, 풀뿌리라는 의미도 담겨 있거든요. 68년 혁명운동의 부산물인 참여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뜻하는 녹색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녹색과 사회주의의 뿌리로 돌아가자고 하는 거는 서로 만나게 됩니다. 제 발제문에 보면, 이러한 사회주의의 전통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흐름으로 ‘길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이런 것들을 소개해 놨는데요. 그건 자료로 대체하기로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현대에 있어서 사회주의의 핵심은 국가소유 이런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회주의 얘기하면 국유화부터 얘기하잖아요. 이런 부분이 아니라. 그리고 작년에 전세계적으로 벌어졌던 점거운동, 점거운동의 기본가치가 뭡니까? 사실은 촛불시위 때 나타났던 새로운 흐름과 다른 게 아니거든요. 내 삶은 내가 알아서 결정하겠다. 이게 전통적인 ‘국가중심 사회주의’와는 배치되는, 반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의 뿌리인 사회중심의 사회주의에 가장 잘 부합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거행위, 점거의 이상(理想)이 사회경제적 삶의 중심지인 기업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을 때 저는 그게 사실 21세기 사회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동자 자주경영을 넘어서는 여러 가지 고민꺼리들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출발점은 그렇다는 것이고요. 이게 녹색사회주의와 관련해서 두 번째로 말씀드리는 거고요.


왜 녹색사회주의인가 3. 성장에서 성숙으로, 노동에서 문화로 "좋은 삶"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그러면 이런 것들을 통해서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점이 있을 겁니다. 한마디로 좋은 삶,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좋은 삶. 마르크스 엥겔스도 <공산당 선언> 맨 마지막에서 좋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전제조건이 된다.” 굉장히 알아듣기 힘든 독일철학 표현으로 쓴 것이지만, 자기 나름대로 좋은 삶에 대한 얘기를 한거잖습니까?

사실은 이제까지 사회주의에서 좋은 삶은 자본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성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장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경제학적 정의가 아니라, 성장이라는 걸 대중들이 머리에 떠올렸을 때 막연한 그림. 이게 자본주의에서도 그랬고, 사회주의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거죠. 크게 다르지 않은 가운데 사회주의가 경제적으로 밀리니까 사회주의가 망한거죠. 저는 이 ‘성장’이라고 표상되는 ‘좋은 삶’이 아닌, 다른 ‘좋은 삶’을 제시를 해야 되고, 거기를 향해 나아가야 되고, 이게 녹색사회주의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역설적으로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것 중에 사장되었던, 부각되지 못했던 바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이게 자본론 3권에서 얘기하고 있는 ‘자유의 왕국’이라는 이야기죠. ‘자유의 왕국’은 결국 자유시간의 확보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얘기하면, 포스트모던이니 여러 얘기가 나오는데, 사실은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겁니다. 노동과정을 노동자가 통제해야 되지만, 노동과정은 어쨌든 고통스러운, 사람의 생존을 위해서 시간을 죽이는 활동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해방의, ‘자유의 왕국’의 토대는 ‘자유시간’이다.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라는 건 결국은 자유시간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은 생산 강박으로부터 족쇄가 풀어진 사람들의 삶이겠죠. 이게 기술적으로 표현했을 때는 ‘노동시간의 획기적인 단축’이고요. 이걸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게 녹색사회주의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시간 단축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확대가 같이 연동되어야겠죠. 그래야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또 다른 사람들은 실업이나 비정규직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일자리를 채우면서 더욱 더 노동시간이 단축될 여지들이 생기는 것이고요. 그에 대한 중요한 제도적 보완장치로 ‘기본소득’ 등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걸 대중적으로 표상하는 건 더 이상 ‘성장’은 아닐거라고 봅니다. 물론 GDP 성장이라는 어떤 경제학적 척도는 계속 남아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마이너스가 될 때 보다는 플러스가 될 때가 낫다는 등은 여전히 중요한 판단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중적인 표상으로서의 ‘성장’, 외연적으로 계속 확대되어야만 우리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바뀌어야 된다는 것이고요. 일본 쪽에서 나온 얘기 중 하나는, ‘성장’이 아니라 ‘성숙’이 삶의 가치가 되어야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중요하게 참고할 만한 이야기라고 봅니다.

녹색사회주의에 대한 제가 생각하는 골자를 세 가지 측면에서 말씀을 드렸고요. 여기까지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얘기들이었는데요. 이걸 한국에 적용을 시켜야겠죠. 한국에서 녹색사회주의를 하자는 게 녹색 좌파정당의 취지이기 때문에요. 거기에 대해서 제가 부족하나마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끝맺겠습니다. 이 글에는 구체적으로 안나와 있는데요. 제가 구두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적 성장자본주의의 결과 -삶의 말살, 삶터의 말살

저는 한국 자본주의의 중요한 기원은 결국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박정희의 자본주의는 독특한 자본주의예요. 기존 운동권 이론에서 박정희가 친미 정권이었다는 측면을 강조하면서, 친미 자본주의, 마치 미국식 자유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데, 분명히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른 점들의 역사적 기원은 만주국 체제죠. 1930년대 만주에 건설되었던 체제는, 자본주의이면서, 1930년대 소련의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한 아주 이상한 자본주의 체제를 일본인들이 만들어놓고 있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박정희, 최규하 같은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이 60년대에 자본주의 초기 정책들을 펼치면서, 국가사회주의의 어떤 특정한 측면과 결합된 한국 자본주의를 만들었고요. 그리고 그것이 완숙되어가는 시점에 중요한 시도들 중 하나가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이죠.

재밌는 거는 새마을 운동의 상징 색도 녹색입니다. 녹색이 필드에서 서로 상반된 세력이 싸우는거죠. 현대사라는 배경에서. 이때 이루어진 중요한 측면들을 보면, 자본축적을 위한 총동원체제였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총동원, 국민들의 역량을 총동원했던 거고. 그러면서 두 번째로 그동안 그나마 존재했던 사회의 여러 자율적인 요소들을 최대한 국가로 흡수했습니다. 가령, 하다못해 사람들의 자율적인 금융시스템이었던 ‘계’ 이런 것도 새마을금고 이런 식으로 국가가 감독할 수 있는 체제로 흡수해 버리죠. 마을회관 만든 게 좋은 게 아니죠. 사실은 그때 ‘마을회관’을 그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후에 좌파가 ‘민중의집’을 만들 힘이 떨어진 거죠. 외국에서는 그걸 그전에 좌파들이 ‘민중의집’을 만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좌파들이 싸그리 다 죽은 상황에서, 마을회관을 국가가 짓기 시작한 거거든요. 그러면서 당연히 공동체의 자원들이 말살되었죠.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고도로 개인화되면서, 한편으로 고도로 국가화되는. 양측면이 같이 갔던 거고. 이게 지리적인, 지역적인 측면에서 보면, 고도로 초집중제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소도시들이 말살되고, 수도권이 하나의 도시국가가 형성되고. 농촌이 말살되었죠. 이런 틀 안에서, 이게 1990년대 말부터는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결합이 된 게 한국의 자본주의지, 한국의 자본주의를 그냥 신자유주의 일반에서 연역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요. 저는 한국에서의 녹색사회주의라는 것은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한국의 역사적 과정들에 대한 ‘회복혁명’, ‘치유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회복’이라고 해서 과거로 그냥 돌아가자, 일부 생태주의 얘기하시는 분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있는거 같아요. 저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고요. 일부 성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과를 비판적으로 전유하면서, 기본적인 틀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반환혁명’(?), ‘회복혁명’ 이런 의미에서의 한국에서의 녹색사회주의다 라고 생각하고요.
거기서 중요한 내용들이, 사실은 아까 말씀드린 내용이랑 맥이 닿죠. 결국은 보편적인 맥락이 한국에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한국의 자본축적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중독 인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노동시간 단축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좋은 일자리 공유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한 복지국가.


도농관계의 전환, 에너지 전환- 한국에서 녹색사회주의의 과제

두 번째는 도농 관계가 전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문명이 발달한 상황에서 사실은 도시문명이 없어질 수는 없다고 봐요. 인간은 끊임없이 도시문명을 만들면서 자유를 꾀해 왔던 과정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한국처럼 수도권 도시국가와 나머지 식민세계로 존재하는 형태가 아니라, 문화와, 복지, 정치 등등의 중심지로서의 중간 규모의 도시들이 있고.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농촌 지역이 있고. 그런 식으로. 지역자립형 체제들이 갖춰지는 것.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보지만, 그걸 향해서 나아가는 게 녹색사회주의의 한국에서의 중요한 과제라고 보고요.

이것과 연동이 된 게 세 번째 에너지전환이라고 봅니다. 바로 이 과정과 함께 태양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보고요. 이렇게 이행해 나가기 위해서 결국은 생산단위 차원에서는 노동자 자주관리가 필요하고, 전체 사회경제적 차원에서는 참여계획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이 자본으로부터 벗어나고 비시장적인 그런 행위들이 확산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세 가지 과제들이 실현되어 나아가는 것. 이게 지금 현재 상황에서 녹색사회주의라고 얘기했을 때 주요한 논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을 계속 구체화시켜 나가면서 만들어나가는 정당이 이 시대에 필요한 녹색좌파정당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김현우 : 말씀 잘 들었고요. 발제문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구두로 표현한 부분은 조만간 글로 쓰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진보신당을 가지고 녹색정당으로 갈 것인가 얘기는 안 나온거 같은데. 플로어에서 거들어서 얘기를 할 수 있을 거 같고요. 지금 세 분에게 토론을 부탁드렸는데, 각각 이 발제문에 대한 의견보다는 약간 다른 얘깃거리를 던져주는 그런 내용이 될 거 같아요. 그래도 상관없다고 보고요.



토론회 속기록① 새로운 좌파정당, 왜 녹색이어야 하나 http://newjinbo.org/n_news/news/view.html?no=1235
토론회 속기록② 지구생태계,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모두 연결돼 http://newjinbo.org/n_news/news/view.html?no=1241
토론회 속기록③ '녹색 시민' 출현해야 '녹색 정치' 된다 http://newjinbo.org/n_news/news/view.html?no=1242

발제문까지가 정말 좋았고, 그 이후로는 토론회라는 형식 때문인지 좀 두서가 없음. 여러명이 나오기도 하고, 막 이야기가 오락가락함. 정리가 안 되는 분위기. 읽어봐서 나쁠 것 없긴 한데, 분량 압박 때문에, 뭐 그에도 불구하고 굳이 읽어봐야 할 필욘 없는 듯.
* 너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7-02-1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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