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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이야기⑤ 보편 복지 확산의 지렛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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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이야기⑤ 보편 복지 확산의 지렛대
2012/09/24 10:21 입력    

전면 무상급식과 역진 불가능

경기도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시작된 전면 무상급식이 어느덧 전국적 대세가 되었다. 더불어 보편 복지가 민주통합당의 핵심 당론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과 보수우파세력이 “부자급식”, “세금급식” 등의 표현을 써가며 프레임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패배했다. 그리고 전면 무상급식은 전국으로 확대 중이다. 무상급식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보편 복지는 ‘역진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제도로 확립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종결자인 대처 영국 총리도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가의료제공방식)의 근간까지 흔들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보편 복지의 재원 마련 방안이며 실현 가능성이다. 좌파적으로 정치를 생각했을 때, 보편 복지를 역진 불가능하게 만들려면 재원 역시 돌이킬 수 없는 확고한 체계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보편 복지를 확장하는 구체적 지렛대가 필요하며 그 중 하나가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과 보편 복지의 관계

한국에서 기본소득 담론은 보편 복지와 인연이 깊다. 기본소득이 가장 좋은 보편 복지 중 하나라고 소개하는 사람도 꽤 있다. 긍정적일 때도 있으나 기본소득이 보편 복지 담론으로 취급되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다. “기본소득은 어떠한 자산 심사와 노동 요구 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잔여ㆍ시혜ㆍ선별적 복지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기획이다. 기본 정의로만 보자면, 기본소득은 현금 소득에 한정되지만, 다양한 형태의 현물 역시 기본소득에 포함될 수 있다.

기본소득의 좌파적 설계는, 자본주의 황금기 시절(1950~70년대)의 보조적 복지 및 사회제도와 완전히 달라야 한다. 자본주의 변화와 신자유주의 종식 이후의 사회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케인즈주의적 처방은 단기 해법에 불과하다.

매우 중요한 원칙: 개별성과 보편성 그리고 충분성

기본소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개별성과 보편성이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면 충분성이다.

가족, 가구, 가계, 사회공동체 등의 특정 집단이 아니라 각자의 개인에게 지급한다는 발상이 기본소득의 핵심 원칙인 이유는 단순하다. 개인의 자유 확대라는 이상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자유방임주의, 케인즈주의, 신자유주의 등의 주류 질서는 끝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남겼다. 국가 또는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를 없애지 못했다. 초기 자본주의 국가가 그랬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그랬고,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그랬고, 신자유주의 국가는 더 심했다.

대표적인 것은 노동의 강제적 측면이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원하지 않아도 강제노동을 해야 했고,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최소한의 기준이 임금노동이었고, 신자유주의 국가는 노동하고 싶어도 배제하는 체제를 통해 유지되었다. 임금노동만이 가치의 기준인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침해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족 또는 가계 단위로 행해지는 복지 제도의 한계가 명확하다. 저출산 고령화, 핵가족화, 가족의 해체라는 시대의 흐름이 명확하다. 100년 전에 설계된 복지 제도의 틀로 개인의 삶을 우겨넣을 수 없다.

보편성은 선별성과 대립하는 개념이다. 자산에 대한 심사, 노동 여부에 대한 심사, 사생활에 대한 심사가 없어야 한다는 보편성 원칙 역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라는 근원적 가치와 연결되며, 민주주의 발전을 이끈다.

충분성은 기본소득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예상되는 효과다. 최소한의 생활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만큼의 기본소득 지급액을 설계하는 것이다. 지금 딱 이 시점에서, 기본소득 액수로 책정할만한 최소한의 액수는 월 40만 원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좌파적 기본소득이 지향하는 보편 복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선별적 복지의 대표적 제도다. 선별적 복지는 일정한 조건에 맞을 때에만 지급되는 복지이기에, 심사라는 방식으로 대상자에게 증명 책임을 요구한다. 개인은 수급을 받으려고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자격 심사를 위해 사적인 정보를 공개하고 또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에 발표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관한 통계는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인, 복지의 근본 취지와 모순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런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아무리 다른 선별적 복지 제도를 도입해도 그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근로장려금(EITC: Earned Income Tax Credit)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표적 사각지대인 ‘차상위계층’을 지원하는 제도이나,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비현실적으로 설계되어 실효성이 거의 없다.



사회보험제도는 임금 노동을 하거나 일정한 기여(돈 납부)를 한 사람에게 보조적인 형태로 공적 보험에 가입하도록 한 제도다. 임금 노동만으로는 보호받을 수 없는 실업의 공포, 산업재해의 공포, 병원비 부담, 은퇴 이후의 노후 소득 등을 대비하도록 했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모순에 처해 있다. 고용보험의 영원한 사각지대는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노동의 확산, 실업의 증가와 장기화, 영세자영업의 증가와 파산 때문에 발생한다. 고용보험제도가 미비하므로 실업급여는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만 이뤄질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은 낮은 보장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더불어 영국의 NHS와 같은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일차적 과제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선 임금 노동자들의 세 부담이 불가피하다. 국민연금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재정 악화가 가장 큰 난제다. 연기금 운용에서 참여, 민주, 투명의 원리가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 사회보험제도는 여러 난제가 겹쳐져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입자(기여자) 중심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제도 자체다. 남성ㆍ정규직ㆍ대공장 중심으로 짜인 소득비례방식의 사회보험은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구조인데다 경제위기로 미납입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개선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시장에서 임금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현실화해야 한다. 둘째, 불안정고용과 저임금을 보완하기 위해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 등의 사회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셋째, 기존의 사회보험제도에서 불안정노동계층을 포괄할 방안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배제의 영역을 최소화해야 한다. 넷째, 실업부조를 도입해야 한다. 다섯째, 보편 복지의 탈(脫)시장화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기본소득을 기준으로 보편 복지의 가이드라인 만들기

‘부양의무자’라는 해괴한 심사 기준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삭제하는 진보적인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4대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저소득계층을 위한 보험금 감면 법안 역시 구체화한 것이 있다. 그러나 선별적 복지의 문제를 다른 선별적 복지를 추가해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무상급식이 바로 그 사례이며, 보편 복지의 전면적 도입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보편 복지의 전면적 도입을 위한 지렛대는 바로 기본소득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근로장려금 등의 사회부조는 ‘충분한 기본소득’의 전면적 도입에 발맞추어, 장기적으로 폐지해도 될 것이다. 단, 장애인 등의 특수계층에 대한 사회서비스는 오히려 확대돼야 한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현재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점차 확대해야 할 것이며, 실업급여는 ‘충분한 기본소득’의 도입과 더불어 폐지해도 될 것이다. 건강보험은 조세형 보편 복지로 통합되어 사각지대 제로의 무상의료가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 역시 ‘충분한 기본소득’의 도입과 더불어 폐지해도 될 것이다. 연기금은 다른 활용방안을 구상할 수 있다.

기본소득 도입이 보편 복지의 확산이라고 한 것은, 사회보험제도를 ‘임금’ 개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교육ㆍ의료ㆍ주거ㆍ보육ㆍ노후 등의 보편 복지는 조세형 보편 복지로 전환되어야 한다. 현행 사회보험제도의 발전은 ‘복지 체험’의 과정이며, 역진 불가능한 보편 복지 사회를 만들 것이다. 보편 복지 확대와 기본소득은 ‘권리 체험’으로 이어진다.

[ 권문석 [기본소득위원회(준), 정책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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