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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소비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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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과 여성의 사회진출

2010년 3월 8일,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은 한국경제 설명을 위한 외신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마침 그날이 세계여성의 날이었던 것이 시끄러운 스캔들의 전조였을까. OECD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사회참여도와 저 낮은 평등지수에서 헤어날 길 없는 한국여성들을 한국경제와 연결시키며 <윌스트리트저널>의 기자가 운을 뗐다.

“한국여성의 사회 참여가 저조한 것은 룸살롱 등 잘못된 직장 회식문화 때문 아닌가?”에 이어서 “기업체 직원들이 재정부 직원들을 룸살롱에 데려가는 걸로 아는데 이에 대한 기준이 있나?”라고도 물었다. 이 기자뿐 아니라 CBS라디오의 기자도 “룸살롱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게 대기업 인사들인데 이런 대기업들에 대한 세금 감면 등의 접대비 허용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며 접대문화에 대한 그들의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동방예의지국의 장관답게 윤증현 장관은 당연히 이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을 점잖은 말로 피해 갔다. ‘재정부 직원들은 룸살롱 접대를 받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 한국처럼 여성의 위상이 높은 나라도 없으며, 여성 사회참여가 하도 활발하여 저출산이란 사회문제를 야기할 정도라고. 완전히 잘못 알고 계신거’라고.....

간담회 후, 재정부 직원이 “어떻게 일국의 장관에게 룸살롱, 접대와 같은 부적절한 어휘를 건넬 수 있느냐.”며 기자의 예의 바르지 못한 질문에 분노를 표하자, 기자는 “왜 당신이 질문이 적절한지 안 한지를 판단하는가”하며 항의했다. 기획재정부에서는 기자의 무례를 용서치 않겠다면서 <윌스트리트저널>에 대한 공보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고, <윌스트리트저널>본사에도 정부 차원의 항의서한을 보낼 계획임을 밝혔다. 한국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 사건을 ‘외국기자의 한국 멸시 발언’ 내지는 ‘황당, 부적절 발언’으로 사건을 호도하며, ‘국민 자존심에 상처를 준 기자’라는 식으로 국가적 자존심을 공연히 걸고 넘어졌다.

그러면서 기획재정부의 항의가 당당한 ‘국격 지키기’라도 되는 듯 지지를 표했다.

네티즌들은 ‘한국여자들이 모조리 룸살롱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회 다른 부분에 진출하지 못한다는 거냐. 한국여자에 대한 모욕이다. 여성단체들 항의해야 한다.’ 는 식으로 문제의 본질을 이해 못하고, 봉창을 두드렸다. 그나마 사건은 제대로 언론을 통해 다뤄지지 않고, 며칠 뒤 대부분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이 사건을 다룬 기사가 모조리 삭제됐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관기발언으로 본색을 드러내던 현직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마사지걸 고르는 지혜를 설파하고, 집권당의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구의 화끈한 밤문화를 자랑하는 나라. 80년대 학생운동 시절 장을 맡았던 사내들이 드디어 정치판에서 한몫을 잡고 386이라는 정치세력을 구성하여, 그들의 성지인 광주 5.18묘역을 참배한 후 들른 곳도 여자들을 끼고 앉아 술을 받는 곳인 그런 나라에서, 외국기자가 장관에게 그 요상한 접대문화에 대해 질문 좀 했기로, 누구의 기준에서 부적절하단 말인가?

이미 오래전부터 술집에서 여자들을 끼고 노는 것은 이 나라 남자들 최대의 오락이었다. 그러나 19세기까지 어지간한 선비들은 시도 짓고, 글도 쓰고, 사군자도 치면서 삶의 은유가 우리 일생의 언저리에 머물게 할 줄도 알았다. 그러면서 여인의 치마폭에도 안겼던 것이다. 거친 파도에 휘말린 돛단배처럼 우리의 운명이 끊임없는 격랑에 휘둘리던 20세기를 휘적휘적 건너오는 동안 우리의 인문학적, 예술적인 삶의 여유는 폭풍이 쓸고 간 폐허처럼 앙상한 흔적만 남겨 높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상륙한 자본주의는 즉물적인 여흥의 욕구만이 수컷들의 삶을 지배하게 했다. 한국남자들이 절대 공유하는 지고의 오락을 여성의 사회 진출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란 시각으로 들이대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겠지.

더구나 이렇게 폼 잡고 국가경제라는 중대사를 거론하는 자리에서 추잡스런 룸살롱을 거론하니 시비 거는 걸로밖에 이해할 수 없었을 테다. 언제나 보여 주는 현실과 감추어야 할 현실이 따로 존재하니까 말이다.



외국기자들뿐 아니라, 평범한 외국인들의 눈에도 붉은 네온 십자가와 함께 전국에 빠짐없이 들어차 있는 유흥업소들은 진기한 현대 한국의 현상으로,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 키워드를 제공하는 한 요소이다. 더구나 이 업소들에서 소비되는 국부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기자들 입장에서, 한국경제와 관련한 간담회에서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에 의해 한국사회가 장악된 이후,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여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소위 텐프로로 불리는 강남의 유흥업소에선 여대생도 한 달에 천만 원을 쥘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미치도록 치솟기만 하는 등록금을 지불하기 위해서라는데, 오히려 그런 곳에 취업할 수 있는 외모를 가진 여성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형국이다.

또 한편엔 남편 월급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아이들의 학원비를 위해 노래방 도우미로 활약하는 엄마들도 계시다. 신인 여배우 하나를 돌아가면서 술안주로, 노리개로 삼는 권력을 허리에 차고 있는 자들도 예나 지금이나 넘쳐 난다. 이들의 본업은 여대생이고 가정주부이며, 여배우지만, 이들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창녀로 전락시킨다.

지난 10년간 강화된 보육정책에 힘입어 급속히 늘어난 여성 일자리중의 하나는 보육교사이다. 국가부도 사태만큼이나 심각한 사태라고 호들갑을 떨며 대책 마련에 부심인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성적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우선적인 대책은 개선된 보육제도의 마련이다. 그러나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11시간 노동을 하는 이들 보육교사들이 받는 임금은 120만원 안팎이다. 대체 이 일을 하라는 것일까 말라는 것일까? 아니면 모성을 발휘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집에서 노느니 한 푼이라도 번다는 심정으로 하라는 것인지.

우후죽순으로 전국을 누비는 김밥 한 줄 천 원, 24시간 영업의 선두주자, 처절한 외식업계의 경쟁을 온몸으로 입증해 주는 ‘김밥천국’에서 하루 12시간, 30일 노동을 하면 받을 수 있는 월급은 100만 원 안팎이다. 그 잘난 삼성계열도 아닌 것이, 노조 만들었다고 노동자들을 모조리 해고했던 기륭전자 여직원들이 받던 임금도 64만원이었다.

문제의 기자회견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이 반박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 새로 임명된 여자 검사들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검사가 된 것은 비교적 공평하게 주어지는 얼마 안 되는 선발의 기회를 자신들의 노력으로 차지한 것이지, 이 사회가 그녀들에게 제공한 것이 아니다. 2009년 대학 진학률에서 여성(82.4%)은 남성(81.6%)을 앞섰다. 2008년에는 행정고시51%, 외무고시65.7%, 사법고시38.0% 등, 고난도의 국가고시에서 성별간의 우열은 오히려 여성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데 가까이 가고 있다. 교대는 여성들에 장악된 지 오래되었다. 남성들이 그들의 편견으로 차단할 수 없는, 오로지 실력으로 돌파할 수 있는 모든 직업의 영역에서 여성들은 이미 충분히 파고들었다.

그러나 2099년은 통계가 시작된 이후 대졸 여성의 실업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기록된 해였다. 신자유주의가 전면화 되는 과정 속에 일어난 변화 중의 하나가 여성 노동조건의 심각한 악화였다. 여성의 평균급여는 남성의 61%수준에 불과하다. 기업들은 대졸 여성들에게 노골적으로 일자리의 기회를 닫아 놓기 시작했다. 반면 무한대로 계속 늘어가기만 하는 단 하나의 분야, ‘서비스업’이다. 주 50~70시간 노동에 간신히 100만 원 안팎의 살인적 월급만을 거머쥐지 않는 ‘서비스업’은 몸 파는 것을 겸하는 직업들로 축소된다.

압축해서 말하자면, 이 나라의 남성들은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차단하고, 대신 몸을 파는 업종에 대한 수요는 최대한 확대해 놓고 그 속에 미끼를 잔뜩 넣어 둔 채, 여성들이 그 속에 발을 담그기를 기다렸다가,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그 질척거리는 수렁에 여성들이 발을 디디면, 몸이나 파는 천한 것들이라고 조롱하는 형국인 것이다.





동방예의지국 : 스스로를 접대하는 남성카르텔

17~18년 전 국영기업체에서 일할 때, 입사 동기 남자 직원들은 월말이면 오후 내내 가짜 영수증을 구하러 무교동 일대를 해매고 다녔다. 업무추진비를 지출하기 위해 가짜로 서류를 꾸미고, 가짜 영수증을 여기저기서 구해서 그 서류에 증빙으로 첨부하는 일은 상사들 뒷주머니를 넉넉하게 만들어 주는 일뿐 아니라, 2~3차로 이어지는 그들의 긴 회식과도 관련이 있었다.

군대에서 간신한 탈출한 그들은 사회초년생이 되어서, 이 일 같지 않은 일들을 하면서 자존심을 뭉개고 더러운 세상으로 들어간다. 직장이 깃발 없는 군대라는 것을 철저하게 배우고,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를 익힌다. 그들의 회식에 여성들은 동참하지도, 영수증을 구하러 다니지도 않는다. 대신 남성카르텔에서 주고받는 권력의 배분에서 제외된다.

<윌스트리저널>기자의 질문에 다소의 함축과 비약이 있을지언정 그 질문은 우리 사회의 혼란스런 모습들을 관통하는 해답들을 담고 있다. 남성들은 고객을 필요 이상으로 접대하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도 접대한다. 여성이란 비싼 ‘오락기구’를 소비하면서. 업무관계에 있으면서 돈과 성으로 단단한 연대를 맺은 남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잡힌 빌미와 보여 준 약점, 제공하고 제공받는 달콤한 오락의 공생관계에서 여성들은 범접할 수 없는 게임의 룰을 만들어 간다. 여성들은 상납되는 장난감일 뿐, 권력을 분배하는 이 공생의 시스템에서 안전하게 배제된다. 그러면서 회사는 종종 한직에 여성 부장,팀장을 만들어 주며, “니들도 열심히 하면 된다.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식으로 생색을 낸다.

“거래처에서 술 한 잔 사달하고 하는데, 삼겹살에 소주 사주고 노래방 가면 계약 깨진다! 술 한 잔 사달라고 하는 것은 룸살롱, 아니 최소한 단란주점에 가서 여자 끼고 4인 기준으로 200만 원 정도 선에서 술 마시는 것을 의미한다. 2차 나가는 것까지 원하면 추가로 120만 원 정도 더 깨지는 것이고. 특히 공무원 넘들이 제대로 한 잔 강남에서 쏘라고 하면 그건 텐프로를 의미하는 것이다! 접대 받는 넘들 대부분 공무원 아니더냐!”

관련 기사 아래 한 네티즌이 달아 놓았던 댓글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방해하는 요인이라는 주장에서 발끈하긴 하지만, ‘접대’라는 점잖은 이름으로 서로가 파 놓은 추잡한 뇌물의 수렁을 벗어날 수 없는 한국남성들도 이를 곤혹스럽게 여기기는 마찬가지다.

고3 때 선생님들이 학력고사가 끝나 이제 곧 학교를 떠날 우리들에게 누설해 준 정보에 따르면, 그들도 역시 룸살롱에 간다는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선 선생이란 호칭을 잠시 잊고, 서로 박사장, 최사장 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기회만 되면 간다.

룸살롱에 간다는 대한민국 남자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 인간들은 진정 취향도 없나.’하는 것이다. 여자랑 성적으로 즐기며 노는 것은 자신의 영혼도 조금은 팔아야 하는 일이다. 몇 시간 동안 한 여자의 허벅지를 주물럭거린다면, 자신의 손도 심장도 같이 접촉하는 수고와 흥분을 동원해야 하는 일이다. 정상적인 자존감을 가진 남자라면, 아무나 눈앞에 있는 여자와 아무리 돈 안 드는 일이라도 성적 유희를 그것도 집단적으로 즐기려 하진 않는다. 그것을 일종의 성적인 장애에 해당한다고, 성정치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지적한다. 심지어는 거위들도 아무하고나 짝을 짓지는 않는다.

군대 가기 전의 친구를 억지로 사창가에 끌고 가는 관습, 그리고 직장에서 초년생들에게 ‘가라 영수증’을 구하러 다니게 만들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단체로 룸살롱에 가서 함께 여성을 소비하는 관행은, 이 들의 자존감과 취향 따위를 거세시키는 의식과도 같다.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그들이 마음을 다해 영혼을 나누는 사랑을 완성해 갈 가능성은 줄어든다.

거부할 수 없이 집요하고 질척한 집단적 성생활의 연대를 맺는 한국남자들. 그들의 습성은 오늘 우리가 겪는 다양한 한국적 비극을 설명해 준다. 여자를 소비하는 남자, 남자에게 소비되는 여자의 관성은 성적으로 여성을 유린하는 일에 대한 집단적 불감증을 남성들에게 심는 듯하다. 일 년 내내 우린 끔찍한 성폭행 사건의 보도에 시달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인구대비 아동성범죄 발생 건수가 세계 최고수준에 이르고 있다. 특히 최근 4년간 아동 성범죄의 증가율은 69%로 감소하거나 다소 줄어든 다른 선진국들의 경향과는 대조적이다.(여성가족부, 2010년). 아동성폭행을 한 남자들 99%가 법정 형량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받는다. 또래의 소녀를 성폭행한 소년들은 대부분 훈방될 뿐이다. 그러나 성폭력으로 임신하고 출산한 소녀는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남자들의 거대한 공모를 통해 자행되는 악행의 증거가 되는 그녀들은 눈앞에서 치우는 것이 미덕이기 때문이다. 근간 우리가 목격한 모든 연쇄살인은 남자가 여자를 죽인 사건이었다. 그녀들의 성을 유린한 후에.



이 정부의 또 다른 과오

기업하기 너무 좋은 나라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기업의 접대비 한도를 2배로 증액하고 접대비 실명제를 폐지했다.(앞선 두 외국기자들의 질문도 이러한 정부의 자발적인 접대문화 확산을 위한 실천에 근거한 것이었다)한국에서 기업을 잘 운영하려면 접대와 뇌물이 기본임을 잘 아는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 정권을 잡아서였을까? 이후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성산업 제1위국의 명예를 차지한다. 2009년 대졸 여성 실업률은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동안, 유흥업계 종사자는 200만에 육박하고 공식적인 산업규모만 연 20조에 이른다.

경찰과 수차례 통화한, 유착관계가 의심되는 강남 유흥업소 한 달 매출이 70억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 현실적인 전체 규모는 20조인지 혹은 그 몇 배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 나라 성산업의 규모가 끊임없이 확장된다는 것은 사회의 음지가 더 확대된다는 것, 여자와 남자가 함께 밝은 곳에서 논의하여 일궈 나갈 수 있는 양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쩔 수 없이 그 음지 말고는 갈 데가 없는 여자들도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학력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여성들에게 돌아오는 일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들이 주종을 이루며, 오로지 성산업계에서만 여성들에게 넉넉한 임금을 제공한다면, 기꺼이 자기 영혼을 팔아 빵을 사고, 명품을 사고, 성형수술을 하는 여성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 소비할수록 우리의 존재는 축소된다” 는 68혁명의 유명한 슬로건이 가장 적절하게 들어맞는 현대사회의 소비는 여성을 소비하는 남성의 소비일 것이다.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찾아낸, 자신과 비슷한 빛깔의 영혼을 지닌 여인과 온 심정을 다해 사랑하는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의 몸을 파는 여인의 성을 소비하는 남자는 가장 비참하고 어리석은 소비자이기도 하다. 김용철 변호사도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룸살롱을 ‘악의 축’이라고 지목한 바 있다. 룸살롱에서 한국사회의 모든 표면적 가치는 역전된다. 조롱되고, 버려진다. 거기서 뿌려지는 돈의 절반만이라도 여성들의 건강한 일자리들을 위해 쓰일 수 있다면, 한국사회는 썩어 가는 밑동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행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남성이 맞이할 불행은 필연적이다. 사회가 함께 가꾸고 누려 가야 할 풍요를 남성카르텔이 그들만의 밤의 병적인 여흥을 위해 커튼 뒤로 감추며, 그들의 동등한 파트너이어야 할 여성을 그들의 소비 품목이나 입주 도우미로 전락시키는 동안 사회는 밑동부터 서서히 썩어 전체를 위협한다.




-야성의 사랑학 / 목수정
* 너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7-02-1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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