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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화는 시대적 숙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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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화는 시대적 숙명인가
        [31호] 2011년 04월 08일 (금) 19:16:11        레미 르페브르  info@ilemonde.com        
<b>“프랑스인들의 가치관이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우파의 가치가) 그렇게 권위적이지도 않고, (프랑스 사회가) 그렇게 안전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최근 사르코지 대통령이 내놓은 주장이다. 직전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도 유난히 기권율이 높은 것을 보면, 프랑스인들은 정치적 대표성 자체를 문제시하는 듯하다.</b>

급진주의든 개량주의든, 좌파는 금융위기에서 아무런 득을 보지 못했다. 이제 막 시작된 듯한 경제 자유주의 관련 문제제기에서도 얻은 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금융 자본주의가 사상적으로 불안정해 보였던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역사적 실패를 기록했다. 대서양 너머 미국에서도 중간선거에서 우파 바람이 불어 버락 오바마의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자리를 잃었다. 1990년대 말에 견줬을 때 좌파의 퇴보는 서구 사회의 우경화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정계 및 학계 일각에서 크게 호응을 얻는 우경화 가설은, 2007년 프랑스 대선에서 사르코지가 당선된 이유에 대한 문화적 헤게모니 차원의 설명에 대거 이용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사르코지도 안토니오 그람시를 원용하며 모든 선거 승리의 선결 조건인 문화투쟁에서 이긴 것을 자축하지 않았던가?
이런 이데올로기적 해석에 따르면, 소비 지향적 개인주의가 부상하고 쾌락주의적 사생활로 치우치는 현대사회에서 좌파의 이상은 더 이상 사회적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듯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이라고 치부되는 좌파의 원칙이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보는 게 역사의 흐름인 것 같다. 즉, 대세는 우파라는 것이다.

<b>그람시를 원용하는 사르코지</b>

이런 가설은 최근 라파엘레 시몬의 책 <달콤한 괴물>에서 구체화됐다. 이 책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양쪽에서 모두 크게 논란이 되는 가운데, 관련 해석도 대거 쏟아지고 있다.(1) 이탈리아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인 라파엘레 시몬에게 좌파의 총체적 열세, 나아가 쇠퇴의 경향은 그가 ‘달콤한 괴물’이라 명명한 ‘현대 문화’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미디어와 소비주의, 그리고 개인주의로 특징짓는 신우파의 총체적인 경제·사상적 구조가 좌파의 구상을 심각하게 약화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진보 진영을 자처하는 이 지식인의 견해에서는 극단적 비관주의의 냄새가 난다. 자기 자신도 포함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저자는 “아직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밝힌다. 시몬의 주장에서는 실질적 문제들이 제기된다. 경제 자유주의의 사상적 우위는 문화적 토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는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확실히 좌파는 이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거나 이를 정당화하려고만 했다. 심지어 단순화해 생각한다. ‘신우파’가 득세하게 된 건 우선 좌파가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b>우경화는 소비사회 ‘문화적’ 현상?</b>

<img src=http://www.ilemonde.com/news/photo/201104/1268_1486_2957.jpg>
▲ <선인장>, 2005-안토니 로스 블라스코 라파엘레 시몬은 자유주의가 우세하는 현 상황이 경제적 맥락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심도 있는 문화적 역동성에도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b>소비하고 즐기며 젊음을 유지하는 것, 이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가 늘 따라야 할 절대명령 같은 것이다. 인터넷의 발전은 이런 풍조를 널리 확산시키며 더욱 우위를 차지하게 한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삶에서 새로운 욕구와 의존성을 끊임없이 창출함으로써 힘을 얻는다. 자본주의는 다름 아닌 나르시시즘 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사상이다. 시몬에 따르면 현대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고 격앙되며 선동적인 정서는 이기주의, 즉 자신에 대한 집착이다. 소비 중심 사회는 정치적 열정을 약화하는 데 기여하며, 노동자 계급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데 일조한다. 현대사회의 노동자 계급은 자본가 계급처럼 보이려 애쓴다.
소비 성향은 현재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미래에 대한 인식은 설 자리가 없어지며, 진보 담론은 가치가 실추된다. 고도의 미디어 사회가 되면서 현실과 허구의 구분이 약해지고 모든 게 구경거리로 전락했으며, 좌파의 사상적 합리성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b>
이런 문화적 변화는 사회 변화에 대한 모든 구상의 타당성을 약화한다. 어떤 면에서는 좌파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시몬은 지도자의 도덕적 몰락, 정당의 의식 부재, 정치 사상의 쇠퇴 등 개량주의 좌파 특유의 약점을 외면하지 않는다. 개량주의 좌파는 노동자 투쟁을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제 무덤을 팠다. 노동자 계급을 은폐하다 못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만들었으며, 이들을 ‘앞에 내세우지 못할 존재’, 따라서 옹호할 수 없는 존재로 치부했다. 개량주의 좌파의 원칙은 “포괄적이고 모호하며 타협적이다. 여러 가지 조정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다른 입장에 대해 전혀 배타적이지 않다.” 이탈리아 좌파의 현황을 짚어주면서, 시몬은 이들이 ‘희석됐다’고 표현한다. 해마다 조금씩 알코올 도수가 떨어져 무미한 ‘맹탕’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여기에 있지 않다. 좌파의 쇠퇴는 ‘대적하기 힘들 만큼 폭넓고 강력한 역사적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소비 중심적이며 세계화된 현대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좌파를 우파와 구분해주는) ‘좌파의 이상’은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지 못하는 듯하다.” ‘재미 추구’가 일반화되고 ‘즉자성’의 문화가 강화된 상황에서, 좌파의 이상과 원칙이 이에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좌파 정치는 어떻게 보면 ‘차이트가이스트’(Zeitgeist), 즉 시대정신에 무너진 셈이다. 방향을 상실한 좌파 담론은 개인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 더는 대중에게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신우파는 현대사회에 좀더 조화로운 정치세력으로 대두된다. 우파가 선거에서 승리한 이유는 정치적 구상의 내용 때문이라기보다 시대의 대세적 흐름에 부응하는 실용주의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금욕주의적 노선을 지지한 우파는 때로 보란 듯이 소비의 편에 서 있다. 미디어의 공조로 우파는 “감지되지 않는 장황한 정신구조, 유동적 이데올로기, 흔히 볼 수 있는 태도 및 행동방식 일체로 소개되며, 그 아바타들은 거리와 텔레비전, 혹은 미디어에서 발견된다.” 이 신우파들은 구체적인 정치세력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화에 속한다. 초자본주의적인 신우파 세력은 부와 성공을 내세우며, 지적 활동은 경시한다. 외견상으로는 동시대 개인의 즉각적 관심에 더 가깝고 호의적이며, 역사적 흐름에도 부합하는 신우파가 좌파를 암울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으로 만들어버린다.
<b><달콤한 괴물>을 읽어보면 당혹감에 빠져드는데, 전부 옳은 말 같으면서도 동시에 그른 말 같다.</b> 라파엘레 시몬은 시대의 흐름을 예리하게 잡아내며, 좌파의 가치에 타격을 입히거나 이를 압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b>그는 근본적 원인에는 대략적 설명만 제시한다. 그래서 결국 어쩌자는 말인가. 그는 현대사회에 대해 모호한 비판의 입장을 취한다.</b>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 사회> 비판이나 장 보드리야르의 현실감 상실 비판보다 더 신랄하고 심미적인 관점을 드러내면서도 토크빌식 반민주적, 나아가 반동적 낡은 유산도 차용한다. 좌파의 노동자 계급 포기를 비난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 및 계급투쟁의 현실성은 부인한다. 자신이 바라는 신좌파의 밑그림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신좌파는 시대의 분위기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이를 해체해야 하는가.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가?

<b>유연해진 신우파의 경쟁력 우위?</b>

시몬의 분석은 과도한 ‘쇠퇴론적’ 비관주의로밖에 이어지지 않는다. 그는 저항 및 급진성의 새로운 형태, 좌파에 대한 지적 재정의의 시도, 혹은 생태학을 중심으로 부상하는 ‘후기 유물주의적’ 가치 등에는 조용히 묵인하고 넘어간다. <달콤한 괴물>은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화’와 정계 상황의 변동에서 유래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탈리아의 정치적 특성을 다소 성급하게 서구 민주주의 전체로 일반화했다. 사르코지의 ‘블링블링’ 철학은 저자가 말하는 시대적 분위기에 포함되나, 그렇다고 주당 35시간제를 맹렬히 비판하는 사르코지가 노동가치의 희생을 선거 구호로 삼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파 또한 ‘긴축’이라는 희생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프랑스에서는 시민 가치 체계의 우경화론은 미묘한 차이를 잘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2007년 가장 심층적으로 이루어진 여론조사대로라면, 경제 분야에서 프랑스 국민은 자유주의 및 반자유주의를 사안에 따라 적절히 혼합하길 좋아한다.(2) 대중교통 부문에서의 파업권 제한, 최저 통합 수당이 구직 활동에 미치는 의욕 저하 효과 등 우파의 일부 제안 사항은 점점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서민 계층에서는 경쟁과 관련한 개인주의 가치가 발달하고 있다.

<b>좌파 비판뿐인 비관주의</b>

경제 및 노동 시장, 부의 재분배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에 대해 프랑스 국민이 크게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07년 조사에서 ‘부유층에서 돈을 걷어 빈곤층에게 주어야 한다’는 문항에 응답자의 57%가 호의적인 의견을 표명했다). 따라서 평등 및 연대의 가치는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셈이며, ‘탈연대화’ 과정이 진행되는 건 지나친 판단이다. 일부 국민 계층에서 우경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사람들이 우파의 자유주의 구상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가치 체계 면에서 더 높은 수준의 보호 및 질서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우파가 능숙하게 왜곡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라파엘레 시몬의 비관주의는 책 마지막 부분에서 인간에 대한 본질주의적 개념을 펼쳐놓고 있는 만큼 더욱 반박할 구석이 많다. 저자는 인간이 이기주의에 따라 ‘자연히 우경화’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인간형은 자연히 신자유주의의 공리주의적 인간형을 떠올려준다. 저자가 그토록 비난했던 인간형인데도 말이다.

<b>좌파는 부단한 노력이 곧 숙명</b>

라파엘레 시몬이 기술하는 우경화는 사회학적 변화인 셈인데, 그는 이에 대한 분석 방법은 생각해내지 못한 채 이를 숙명론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계급에 대한 주관적 소속감이 약화되고, 좌파의 조직적 취약성에 따라 서민 계층의 정치 의식이 약화됐다. 사회의 분산 및 분열이 초래되고, 사회적 탈계급화 과정이 양산되는데다, 사회는 고령화하고 주변 도심화가 된다. 이로 인해 좌파는 일관된 정치적 영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우경화 담론은 정치 및 사회의 현 상황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모델을 제시해준다. 더욱이  진보주의의 문화적 약세에 대한 좌파 조직의 사상적 책임을 면해주기 때문에 좀더 잘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여론’에 더욱 부응하는 방향으로의 노선 ‘재정비’에도 정당성을 부여한다. 숙명론적이며 정치적으로 편중된 우경화론은 일종의 ‘포기’를 키워갈 수 있으며, 좌파의 지적 무장 해제를 심화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좌파는 사회의 정치화 동력 및 정치적 문화 변용 추진력을 근간으로 삼아왔다. (사회적 불평등 같은) ‘자연적’ 이치에서 멀어지려는 부단한 노력을 기반으로 삼아왔다. 싸움을 포기하면 우리는 그만큼 더 자발적으로 패배를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글 · 레미 르페브르 Remi Lefebvre

번역 · 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각주>
(1) <달콤한 괴물>, Le Debat-Gallimard, Paris, 2010. <르 데바> 특별호(2010년 제159호) 참조.
(2) 에티엔 슈바이스구트, ‘우경화의 눈속임’, <Revue francaise de science politique>, 2007년 6~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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