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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가 돼지로 보여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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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가 돼지로 보여서, 나는…"
[20대, 녹색 정치를 말하다] 돼지 혹은 돼지고기, 그리고 돼지
기사입력 2012-01-26 오전 8:38:21
                  


지난해 3월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환경 문제가 더이상 일부 전문가들의 '듣기 좋은 꽃노래'가 아닌 시민들의 삶에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단지 방사능 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졌다는 것만이 아니다. 사고는 전력 낭비에는 길들여진 채, 원자력 발전이 일으킬 수 있는 '재앙'에는 무감각하고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의식은 없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비췄다. 이는 원자력 발전뿐 아니라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토건주의, 식품 안전 등 여타 환경 문제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사고는 절망과 동시에 희망을 지폈다. 이러한 자화상에 충격 받은 이들이 곳곳에서 교수 모임, 의사회, 법률가 모임 등 '반핵'을 내세운 모임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탈핵, 탈성장, 탈토건'을 내세운 녹색당이 2월 창당을 준비 중이다.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는 준비위에 참여한 당원들의 이야기를 묶어 조만간 가제 '녹색당선언'이라는 책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그중 20대 청년들의 이야기 5편을 연재한다. <편집자>

1. 죽은 돼지

아버지와 함께 논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어떤 집을 지나치게 되었을 때 나는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의 몸은 전체적으로 검댕이가 묻어있었다. 나는 왠지 온기가 느껴질 거 같아 그것에 손바닥을 대어보고 싶었다. 조금의 진동이라도 일어나면 그것은 곧 꿈틀거릴 거 같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게, 왜 여기에 있지?"라고 말했다. 그건 대답이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것은 곧 분해되어 구워지고 사람들의 목구멍을 통과하고 사람의 몸속에서 돈 다음에 최종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었다. 나는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곧 나는 내 연민이 무언가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김치찌개에서 김치보다 돼지고기를 많이 건져먹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돼지고기를 연민하는구나. 그 돼지고기가 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돼지의 한 조각과 다름이 없는 것인데, 모순이 아닌가, 하나의 동일한 대상에 상반되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나는 곧 연민을 철회했다. 연민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은 돼지고기를 돼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돼지를 돼지고기로 보는 것이었다.

2. 돼지고기들의 죽음

2010년 11월 말 구제역이 발생했다. 나는 사람들과 고깃집에 앉아 돼지 목살과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죽을 먹고 있었다. 고깃집 한 가운데 있는 텔레비전에서 9시 뉴스가 나왔다. 뿌옇게 처리된 화면에서 돼지들이 구덩이로 던져지는 장면이 나왔다. 화면 속 돼지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냈기에 고기를 굽던 사람들은 일제히 텔레비전으로 눈길을 돌렸다. 누군가가 말했다. "아깝다." 그리고 곧 어떤 여자가 울고 있는 드라마 화면으로 채널이 돌아갔다.

돼지고기들이 죽었다. 이 말은 이상하다. 돼지고기들은 어차피 죽은 것들이기에 또 죽을 수가 없다. 정확하게는 돼지고기들이 땅에 묻힌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상한 돼지고기들이 땅에 묻힌 것이다. 이것은 매우 합리적인 처리방식이다. 대량의 상한 돼지고기를 처리하는 좋은 방법은 묻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웃든 울든 그것은 돼지고기에 불과했다. 그것은 돼지고기로 태어나고 돼지고기로 살아가고 돼지고기로 처리되었다.

3. 돼지를 보다

나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채식을 시작했다. 돼지고기가 돼지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소시지든 햄이든 어떻게 모습을 변신하든 나는 식탁 위에서 돼지를 보았다. 그리고 이 돼지의 여정을 생각했다.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곳, 먼지와 분뇨냄새 때문에 숨을 쉬고 눈을 뜨기 어려운 곳에서 몸을 움직일 여유공간이 없는 스툴에 놓인 어미돼지가 여러 새끼들을 낳는다.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미돼지가 부족한 여유공간 때문에 깔고앉거나 스트레스로 물어죽일 수 있다는 이유로 어미와 분리된다. 그리고 이가 뽑히고 거세를 당한다. 이 새끼돼지가 어느정도 자라서 본격적으로 돼지고기가 되기 위한 비육돈장으로 옮겨져 효과적으로 살을 찌우는 사료를 먹으며 운동으로 인한 살의 손실을 막기 위해 좁은 공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태어난지 6개월이 지나면 도살장으로 가는 대형트럭에 실려진다. 이 운송과정에서는 물이나 먹이가 제공될 여지가 없다. 도살장에 도착하면 저항할 때마다 몽둥이를 맞고 발길질을 받으며 차례차례 그들의 삶의 목적이자 삶의 완성인 돼지고기에 도달한다. 그리고 너무나 태연하게 그것이 내 밥상 위에 올려져 있다. 나는 서글퍼진다. 그리고 먹지 않는다.

4. 돼지 되기

2011년 11월 29일 화요일 녹색당창당준비위원회에서 동물보호캠페인을 열었다. 그 날은 구제역파동이 일어난지 1년 되는 날이었다. 그날 필요한 유인물을 작성해야했는데, 나는 생매장되던 날 돼지에게 일어난 일을 서술하는 일을 맡았다. 나는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를 내가 아는 범위에서 상상하며 글을 써내려갔다. 그러기위해서는 돼지가 되어야했다. 돼지가 되어가면서 나는 비로소 돼지고기가 아닌 돼지들을 애도할 수 있었다.

행복한 돼지 이야기

2011년 11월 29일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돼지들을 묻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생산성 저하, 일일이 치료하기 보다는 묻는 것이 더 비용이 덜 든다, 바이러스 증가율 등의 손익 계산과 과학적 근거들이 반영된 조치였지만, 그 계산 안에는 돼지의 살 권리, 고통스럽게 죽지 않을 권리는 포함되지 않았다. 매몰을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작업이 시작되었다. 공무원들이 농가에 찾아와 축산 농민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어떤 공무원들은 공공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며 농민들을 나무랐고, 어떤 공무원들은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 어쩔 수 없다며 농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누군가가 급히 달려와 구덩이가 다 파졌다고 전했다. 그의 안경에는 김이 서렸고 입김이 새하얗게 나왔다.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음을 수긍하고 축사를 개방했고 돼지들이 끌려나왔다. 돼지들은 알 수 없는 바깥구경에 어리둥절하였고, 더러는 불길한 예감에 꽥꽥 거렸다. 공무원들이 순서를 지키며 각자 맡은 돼지들을 끌고 구덩이 앞에 데리고 왔다. 지시가 내려졌고 순서대로 돼지들을 구덩이 안으로 던져 넣었다. 돼지는 공중으로 던져졌고 등부터 땅에 닿았다. 고통으로 몸을 뒤틀다가 돼지들은 신선한 냄새에 코를 킁킁거렸다. 자연 속에서 신선한 흙의 냄새를 맡고 먹이를 찾던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본능이 그들을 자극했다.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흙의 냄새. 돼지들은 흙의 냄새를 맡느라 자신 앞에 닥쳐올 죽음의 운명도 망각하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흙의 냄새를 맡는 돼지들, 그들의 머리 위로, 그들이 그렇게 마냥 신기해했던, 그리고 그들의 조상들이 그렇게 좋아했던 흙무더기가 덮쳐왔다. 그 흙 속에서 질식하며 그들은 내내 살고자 하는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질러댈수록 입속으로 콧속으로 귓속으로 눈속으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았지만, 입안에 흙이 막혀 소리를 내기도 힘들었지만 그저 살고싶다는 본능으로 그들은 마지막 남아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그토록 좋아했던 그 흙의 덩어리들이 그들의 몸속으로 침투해왔다. 서서히 돼지들의 숨이 끊어져갔고 농가주변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어떤 농민은 솜을 귀에 틀어막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이불 속에서 몸을 뒤틀었다. 어떤 농민은 칠흙같은 밤 속에 빛나는 달을 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빌었다. 한 아이가 돼지의 울음소리가 잠잠해지자 끝내 엄마 품속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img src=http://image.pressian.com/images/2012/01/18/60120118111600.JPG>
▲ ⓒ뉴시스

5. 돼지를 생각하다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괴짜일 수도 있다. 식탁 위의 돼지고기를 보고서 이것은 돼지야, 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입맛을 떨어뜨리게 한다. 나는 불편한 존재이다. 나 스스로에게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누가 나와 같이 밥먹는 자리에서 고기를 시켰다고 해서, 이것은 원래 돼지고, 소고, 닭이다, 이것은 살아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매우 불행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돼지고기이자, 소고기이자, 닭고기인 게 또한 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반박하기도 매우 쉽다. 반박의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채소도 살아 있었는데, 우리가 먹기 때문에 죽었다. 그러므로 채소도 먹으면 안 되는 것인가? 그렇게 따지면 먹을 게 없다. 둘째, 인간은 본래 육식을 먹는 것으로 진화되어왔다. 그리고 사자가 영양를 잡아먹듯 육식은 자연의 원리이다. 셋째, 고기는 맛있다, 그리고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

나는 돼지는 채소같은 것이 아니라 감정과 판단능력과 심지어 유머감각까지 있는 동물이다, 인간 행위의 윤리를 자연상태에서 도출해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고기가 맛있다는 것은 사회, 문화적으로 형성된 관념이며 고기는 사람의 건강을 심하게 해친다, 라고 또한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박하지 않으며 이것은 개인의 도덕적 감수성 문제일 뿐이라 이해를 요구한다. 그들의 밥맛을 떨어뜨리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채식으로 나를 이끄는 동력은 신념보다는 어떤 감성적 문제이기 때문에 특정 감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게 부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돼지가 돼지이자 돼지고기이기 때문에 소가 소이자 소고기이가 닭이 닭이자 닭고기이기에 그것은 언제나 상반된 두 개의 관점에서 보여질 수밖에 없는 것을 나는 받아들이고 있다.

녹색당에서 활동하며 많은 채식인을 만난다. 어떤 사람은 환경을 위해, 어떤 사람은 건강을 위해, 어떤 사람은 생명권을 위해 채식을 한다. 그런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비슷한 취향의 음식을 나누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것이다. 그리고 사소하게 보여지는 밥상에서의 먹는 행위가 윤리적 정치적 실천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 돼지를 생각한다. 돼지를 돼지고기가 아니라 돼지로 만나는 것, 죽은 돼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돼지로 만나는 것,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존재로서 돼지와 마주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나는 돼지의 따뜻한 살에 손을 올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정유진 동물보호활동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_facebook.asp?article_num=60120118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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