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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리버럴들’의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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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58‘문화적 리버럴들’의 방송?
프로그램 잇단 흥행으로 지상파보다 영향력 커져가는 CJ E&M
문화적으로는 자유롭고 정치적으로는 개혁적,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인 방송

제988호
등록 : 2013-11-27 12:42 수정 : 2013-11-2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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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슈퍼스타K 5, 댄싱9, 응답하라 1994, 꽃보다 할배.Mnet 제공
직장인 ㅅ(40)씨는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 TV를 켜곤 한다. 지상파 채널에서는 벌써 애국가가 울려퍼졌을 시각,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케이블 채널밖에 없다. 대부분의 채널이 재방송을 반복하는 그때, 멍하게 아무 프로그램이나 보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가만 보니 결코 팬이 아니라 생각했던 <테이스티 로드>(올리브TV)를 들여다보고 있더란다. 그 순간 그는 “CJ 채널의 감수성 혹은 작당에 중독돼 있음을 절절히 느꼈다”. 리모컨을 들면 ㅅ씨의 첫 선택은 SBS ESPN, 그다음으로 자신이 가입한 위성방송에서 제공하는 채널에 따라, 254번 tvN, 줄줄이 건너뛰고 272번 온스타일, 274번 Mnet 등이다. 가족의 전화번호는 외우지 못해도 CJ 채널 번호는 줄줄 외우는 그는 “나날이 기억이 감퇴해 언젠가 내 전화번호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시달리는 아저씨의 마지막 손가락 기억은 254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음악적인 것’을 지향하는 인상

방송을 필두로 대중문화 전반에서 시장을 이끌어가는 집단을 꼽으라면, 2013년 현재 CJ E&M을 빼놓을 수 없게 됐다. 흔들리는 6mm 카메라로 찍었던 요상한 직장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가 얼굴마담이었던 2007년 이후 CJ E&M 채널은 해를 거듭하면서 화제성 있는 프로그램을 양산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 2010년 <슈퍼스타K 2>가 최종회 평균 시청률 18.1%(최고 시청률은 21.1%)를 기록했을 때. 이해를 기점으로 시청률 1%만 넘어도 성공이라는 케이블 프로그램의 시청률 기준이 두 자릿수를 훌쩍 넘어가기 시작했다(표 참조). 누구는 “요즘 <응답하라 1994>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어들 수 없다”고 토로하고, 누구는 “올해의 드라마로 <나인>을 꼽는다”. <슈퍼스타K 5>의 부침은 뉴스가 될 정도였고, <댄싱9>는 침체 일로를 걷던 오디션 프로그램 시장에 새 공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는 사이 과거 시청률 20%를 넘나들기도 했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이 최근에는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거나 종영했다. 그래서 TV 앞에 앉은 이들에게 물었다. “왜 tvN, Mnet, 올리브TV 보세요?”

음악평론가 김학선·차우진, TV평론가 김선영, 이동연 문화연대 소장이 각기 내놓은 답변은 이렇다. 김학선씨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숲> <윤도현의 머스트(MUST)> <쇼 미 더 머니> <밴드의 시대> <음악의 신>을 즐겨 보거나 봤던 프로그램으로 꼽았다. 주로 Mnet의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특히 <밴드의 시대>는 “누구도 홍대 앞 밴드들에게 그 정도 규모의 무대를 제공하지 않았는데, 최소한 음악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고 평가했다. 그가 생각하는 Mnet과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의 가장 큰 차이는 무대에 서는 음악가들이다. 지상파에 나오는 아이돌은 Mnet에도 나오지만 Mnet에 나오는 록·힙합 음악가들은 지상파에 나오지 않는다. 차우진씨는 20~40대 남성을 타깃으로 한 XTM 채널을 주로 본다. <탑 기어 코리아> <벙커> 등 한국형 자동차 예능의 시작점을 열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편 음악평론가로서 Mnet을 바라보는 시선은 김학선씨와 비슷하다. “사람들의 오해처럼 음악을 ‘부수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음악을 중심에 두고 늘 ‘음악적인 것’을 지향하는 인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미디어 그룹들 성장 과정 흡사


김선영씨는 OCN에서 방영한 미국 드라마 시리즈, 영국 드라마 <셜록>, 자체 제작 드라마 <텐>(TEN) 등 수사물을 즐겨 본다. 요즘은 <응답하라 1994>와 시트콤 <감자별 2013QR3>을 좋아한다. 지상파에서는 보기 힘든 장르인데다, 톱스타 위주가 아닌 신선한 캐스팅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기존 드라마들과 차별점으로는, 수사 드라마라는 특화된 장르 안에서 판타지·의학과 결합하는 등 다른 소재들을 보여주는 방식을 꼽는다. tvN 방영 드라마의 경우 <푸른 거탑>이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를 오가거나 다큐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처럼 아예 새로운 장르로 창조하는 등 실험성이 강한 점을 꼽았다. 이동연 소장은 <꽃보다 할배> <택시> 등을 즐겨 봤다. 요즘은 <응답하라 1994>를 챙겨 보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1990년대 대중문화 연구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일상을 담백하게 디자인한 점을 즐겨 보는 이유로 꼽았다. 이렇게 각자 비슷하거나 다른 이유로 적어도 몇 개의 단골 프로그램을 내놓고 평가했다.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에서 나온 기업분석 보고서는 CJ의 성장세에 대해 CNN·HBO 등의 채널을 보유한 타임워너나 MTV를 보유한 비아콤 등 미국 미디어 그룹들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방송업계에서도 CJ E&M의 미래는 성장세로 점쳐진다.





CJ E&M 제작 프로그램들은 드라마와 예능에서 강세를 보인다. 경성 시대를 배경으로 택한 대규모 스케일의 드라마 과 요리 서바이벌 쇼를 표방한 .tvN 제공, 올리브TV 제공
1월,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에서 나온 기업분석 보고서는 CJ의 성장세에 대해 CNN·HBO 등의 채널을 보유한 타임워너나 MTV를 보유한 비아콤 등 미국 미디어 그룹들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방송업계에서도 CJ E&M의 미래는 성장세로 점쳐진다. 김선영씨는 “콘텐츠 시청 수단이 다양화하며 킬러 콘텐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일찌감치 콘텐츠 제작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온 CJ E&M의 성장 가능성은 앞으로가 더 높다”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사 결과 KBS가 방송 사업 수익의 23%를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 데 비해 CJ E&M은 75.2%를 투자했다. 차우진씨는 “콘텐츠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잘 알고 있는 회사라는 생각이 든다. 수익보다는 사명감이라든가 엘리트주의라든가 하는 것들이 지배적인 정서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사업이다. 한국이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팔 것이라곤 무형의 콘텐츠뿐임을 진작에 깨닫고 있는 조직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어쨌거나 타임워너만큼 거대 미디어 그룹이 될지는 아직 판명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 시장을 선점한 만큼, 아시아에서는 중요한 콘텐츠 제작 및 방송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보고서에 쓰인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대기업이 미디어 사업에 진출하면서 인수 및 합병 과정을 지나 그룹의 초기 형태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문장을 뒤집어 말하면 군소 규모의 케이블 시장에서 확실한 ‘공룡 그룹’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CJ는 2009년 오리온그룹의 온미디어를 인수하면서 중소 케이블 채널, 오리온그룹, CJ가 파이를 나눠 가졌던 케이블 시장에서 가장 막강하고 거대한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가 됐다.
지상파 시청률 ↓ CJ E&M 시청률 ↑

김완 <미디어스> 기자는 “유료 방송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지상파와의 관계에서 점차 권력이 역전되는 모습도 보인다. 김완씨는 “다수의 케이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와 CJ 채널들이 재방송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재방송의 시청률이 높고 영향력이 커져 지상파도 CJ에 자기 프로그램을 틀어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전에 지상파가 갑이고 CJ가 을이었다면 이제는 거의 대등한 관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상파와의 관계에서 여전히 CJ가 약자라고 하지만 케이블에서는 절대 강자다. 비유하면 호랑이가 있는 정글의 늑대인데, 호랑이가 점점 멸종하고 있어서 과연 호랑이가 사라진 시대에 늑대는 어떨까 우려된다”고도 덧붙였다.



반대되는 의견도 있다. 김학선씨는 “독과점이 문제가 되는 건 사용자에게 피해가 갈 때지만 아직까지 CJ의 독점이 그런 악화를 구축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CJ가 공룡 채널이 된 것은 경쟁사들이 미처 신경 쓰지 않았던 틈새시장을 장악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 틈새시장 채널들을 매끄럽게 손질해 구분이 불분명했던 각 채널의 색을 더 분명히 하고, 케이블로서의 정체성을 다졌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차우진씨는 지상파 지상주의에서 공룡 케이블 채널의 등장은 오히려 대안적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단, 방송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순환된다는 전제하에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간접광고(PPL), 소비를 부추기는 프로그램 등 상업성이 CJ의 유전자라는 인식은 지워지지 않는다. 압도적이지만 매력적이고, 거북하지만 채널을 돌릴 수 없는, 그래서 CJ 왕국 시민들의 리모컨은 때로 혼란스럽지만 여전히 채널 254번에 고정돼 있다.



지상파의 시청률은 떨어지고 CJ E&M 채널들은 시청률이 오르는 현상 와중에도 프로그램에 마이너한 감성은 여전히 깔려 있다. 그러나 이것이 때로 새로운 것, 독특한 것으로 통하며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를 확보하는 대중성을 키우기도 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1990년대 초반, YS 정권의 자유화·민주화 이후 민주와 보수 사이에서 배제됐던, 공중파에서 활동이 제약됐던 주체들이 대거 CJ E&M으로 옮겨갔다고 본다”고 분석한다. 신자유주의로도 통하고 진보좌파적인 것도 이해하는 이들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주체가 됐다는 것이다. 예컨대 CJ E&M은 유독 퀴어문화에 친화적인 채널이라는 점도 들 수 있다. <프로젝트 런웨이>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등 각종 패션·뷰티 프로그램에 성소수자로 보이는 이들이 자유롭게 등장하고 시청자도 이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문화적으로는 자유롭고 정치적으로는 개혁적인,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친화적인 이들이 만들었거나 보는 방송인 셈이다.

보수는 싫지만 자본의 힘은 긍정하는

“광폭의 리버럴리즘을 구현하는 실력자들”(전규찬)이 만드는 CJ E&M의 프로그램들은 마니악하다 싶을 정도로 세밀하고 진지하게 대중문화를 탐색하지만 한편으로 가장 상업적인 채널로 손꼽히기도 한다. 특히 온스타일, 스토리온, 올리브TV 등의 채널에서 방영되는 많은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소비로 귀결된다. 그래서 이들 프로그램은 1980년대 황금 유년기를 누렸던 지금의 20대 후반~30대가 가장 호응하는 방송이라고 평할 수도 있다. 운동권은 ‘구리지만’ 보수에는 타협할 수 없고, 자본의 힘을 긍정하는 이들, 소비에 길들여지고 TV가 아닌 플랫폼으로 미국 드라마나 해외 예능을 보는 것이 지상파 TV를 보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이들이 CJ E&M의 주요한 시청층이다.

지상파에 비하자면 마이너 감수성이지만 사실은 유행의 최전선에 서서 시청자를 리드하는 채널이 CJ E&M이기도 하다. 시청자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 없어진 것만큼, 방송도 거기에 호응한다. ‘상속녀 스타일’ 메이크업을 전수하는가 하면(<겟잇뷰티>), 고급 자동차를 탐닉하는 이들의 입맛을 맞춰주기도 한다(<탑 기어 코리아>).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거기에 어떤 판타지를 불어넣는가 하면(예정작 <식샤를 합시다>), 연애의 환상과 현실을 적절히 버무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2030 여성 시청자에게 연애 조언자로 나서기도 한다(<로맨스가 필요해>).

그러니 같은 세대 안에서도 취향이 갈리는 때에 전 세대를 아우르는 것을 목표로 한 지상파는 올드 매체가 돼버렸다. 어떤 면에서는, CJ E&M의 가장 큰 경쟁자로 지상파가 아닌 JTBC를 꼽기도 한다. 종합편성채널의 보수성과 CJ의 오락성의 결합을 지향한 채널이 JTBC다. 그러므로 올해는 지상파 채널과 버금가는 자리를 두고 CJ E&M과 JTBC가 경쟁을 본격화한 해로 기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규찬 교수는 세련된 만듦새 안에 담긴 두 채널의 상업성과 보수성에 대해 “새롭고 신선해서 통할 수 있다는 묘한 방심과 안심이 있다. 국가권력에 대해 칼같이 예리하고 단호하게 작동하던 시선이 묘하게 완화된다”고 지적했다.

PPL, 상업성은 CJ의 유전자

CJ E&M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갈린다. CJ E&M이 만든 프로그램들은 기존 체제에 젖어 있던 채널들이 메우지 못하는 구멍을 메워줌으로써 시청자의 갈증을 해소했고, 앞으로도 그런 지점에서 시장을 선도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꽃보다 할배>는 오히려 지상파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상황이 역전됐다. 4차원, 잉여, 병맛, 틈새, 트렌드 등 시청자를 매혹하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누구보다 빨리 콘텐츠에 투자하고 자체 제작 편수를 늘리며 기존 케이블 채널을 능가하는 강자가 됐다. 시사 프로그램 및 뉴스를 제외하고 특히 주말에는 거의 지상파와 비슷한 편성표를 완성한 상태다. 그런 한편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간접광고(PPL), 소비를 부추기는 프로그램 등 상업성이 CJ의 유전자라는 인식은 지워지지 않는다. 압도적이지만 매력적이고, 거북하지만 채널을 돌릴 수 없는, 그래서 CJ 왕국 시민들의 리모컨은 때로 혼란스럽지만 여전히 채널 254번에 고정돼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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