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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 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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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하
‘무아’ 잠재능력이 연기 따라 만들어 낸 상이한 ‘나’
이진경 교수 solaris0@daum.net

▲ 일러스트=김주대 문인화가·시인 윤회하는 수많은 생들의 긍정, 그것은 수많

은 생을 반복하여 사는 힘의 긍정이다. 그때마다 주어진 삶의 조건들을 받아들이

고 그것을 살아내는 힘을 긍정하는 것이란 점에서 그것은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

귀의 사상과 매우 가까이 있다. 극락이든 구원이든, 현세를 떠나는 게 아니라 바

로 지금 여기의 현세적 삶 안에 있으며, 그 삶을 긍정할 만한 것으로 사는 것임

을 말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무아·윤회 모순으로 보이지만
윤회란 영원한 시간 반복해
돌아오는 무아라는 잠재력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과정

그런데 불사의 삶은 그가 살아가는 여러 생의 삶을 관통하는 한 사람을 가정해야

한다. “불락에서 ‘아라비안나이트’를 필사하고, 사마르칸다 감옥에서 장기를

두고, 보헤미아에서 점성학을 연구하기도 하는” 식의 아주 다른 삶을 하나의 ‘

불사의 삶’이라고 말하기 위해선 그 상이한 삶들이 어떤 한 사람의 삶의 계속이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윤회의 관념 또한 그렇다. 윤회는 수많은 생

들을 관통하여 살아가는 단 한 사람의 ‘나’를 가정한다. 아트만이라고 하든 ‘

진아(眞我)’라고 하든, 그런 ‘나’가 없다면, 반복되는 삶이란 여러 사람의 삶

일 뿐이니, 윤회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불교적 사유와 윤회라는 관념 간의 근본적인 이율배반을 보여주는 것 같다.

왜냐하면 불교는 그 다른 삶을 관통하는 아트만은 물론 하나의 삶 안에서조차 ‘

나’라고 부를 실체가 없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윤회란 무아를

요체로 하는 불교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회와 해탈이 다르지 않

다고 긍정하는 대승불교의 논지는 불교로부터 벗어나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나’라는 실체 없이 윤회를 긍정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서 택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여러 삶을 관통하는 ‘나’라는 실체가 없기에

“윤회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불사의 삶 또한 매번 죽는 삶이 이어질 뿐이

며, 불사의 존재란 따로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윤회와 무아의 상충되는 두 개념

에서 전자를 버리고 후자를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각자의 삶을 살고 죽는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통념과 전적으로 동일한 것이 되어 버린다. 불사의 삶

을 추구하는 욕망이 태어난 늪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으로 불사의 욕망을

소멸시키고 윤회의 관념을 넘어설 수 있을까? 누구나 다 아는 통념을 넘어섰다고

믿는 욕망이나 관념을 기존의 통념으로 무력화할 순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삶과

죽음에 대한 뻔한 통념으로 돌아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순 없을까? 불사나 윤

회와 무아를 동시에 말할 순 없는 것일까?

보르헤스가 ‘죽지 않는 사람들’을 썼을 때는, 명료한 것은 아니지만, 불사의

삶을 말하면서 무아를 말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던 것 같다. 불사의 삶을 산

다는 것은 불락에선 ‘아라비안나이트’를 필사하는 누군가가 되어 살고, 사마르

칸다에선 수인이 되어, 보헤미아에선 점성술가가 되어 살고 하는 수많은 삶을 사

는 것이다. 그 삶들을 사는 ‘모든 사람(everybody)’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모든 사람’이 되기 위해선 그는 ‘아무도 아닌 자(nobody)’가 되어야 한다.

계속 이집트어로 책을 필사하는 사람으로 있다면, 보헤미아의 점성술사가 될 수

없을 것이며, 중국에서 장수가 되었다가 인도에 가선 불가촉천민이 되어 신발을

만드는 삶을 이어가며 살 수 없을 것이다. ‘아무도 아닌 자’가 된다는 것은 ‘

나’라고 부를 어떤 동일한 인물이 없을 때에만 가능하다. 요컨대 불사의 존재란

‘모든 사람’이 되는 것이며, 그것은 ‘아무도 아닌 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그 모두를 ‘나’로서 사는 게 아니라, 정해진 ‘나’가 없는 것을 뜻한다. 결코

같다고 할 수 없는 수많은 ‘나’들을 통과하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쓴다

. “나는 마치 율리시즈처럼 ‘아무도 아닌 자’가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나는

모든 사람이 될 것이다. 즉 나는 죽을 것이다.”(‘알렙’, 35~36)

윤회 또한 그럴 것이다. 이전 생에 살던 불가촉천민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면, 다음 생에서 왕의 아들로 태어나도 왕으로 사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기억이

남아있다고 해도 지우려 할 것이고 지우고 말 것이다. 반대의 순서여도 그렇다.

왕의 기억을 갖고 어찌 천민의 삶을 살 것인가! 윤회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전생

의 기억들이 모두 지워지고, 전생과의 연속성이 완전히 사라져야만 가능한 것이

다. 그렇다면 이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라는 실체가 없을 때에만 윤회하

는 삶은 가능하다고. 윤회의 시간을 관통하는 것은 수많은 삶, 그 ‘모든 이’들

이 될 수 있는 ‘아무도 아닌 자’만이 있을 뿐이라고. 어떤 누구도 될 수 있는

‘아무도 아닌 자’, 그것만이 윤회하는 것이라고. 그 ‘아무도 아닌 자’는 불

변의 실체가 아니라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절대적 가변성을 갖는 어떤 능력을 뜻

하는 것일 뿐이라고.

절대적 가변성을 갖는 이 능력을 ‘무아’라고 한다면, 윤회란 그때마다의 연기

적 조건에 따라 수많은 존재자가 될 수 있는 이 잠재적 능력이 펼쳐지는 장이 될

것이다. 이 능력을 ‘생명’이라고 부른다면, 윤회란 니체 말처럼 영원한 시간을

반복하여 되돌아오는 어떤 동일한 힘이 그때마다 다른 양상들로 펼쳐지는 장이

될 것이다.

이런 윤회는 생물학적 죽음에 의해 분할되는 여러 생들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불사의 인간이 된 루포가 불락과 사마르칸다, 보헤미아를 돌아다니며 다

른 삶을 산 것처럼, 우리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러 삶을 산다. 나주에서

농사를 짓다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부산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다가, 대전에

있는 감옥에 갇혀 바둑을 두기도 하고, 마산에 가서 공장에 다니기도 하고…. 길

이만 좀 다르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다를 게 별로 없는 연속적인 삶이다.

물론 윤회는 이와 달리 생물학적 죽음이 그 다른 삶들 사이에 있다. 하지만 우리

가 하나의 생 안에서 이처럼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선,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넘어

가는 지점마다 이 몸 안의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 이전에 ‘나’라고 명명되

던 누군가가 죽고 다른 누군가가 태어나야 한다. 농사를 짓던 ‘나’가 학교에서

그대로 지속되어선 안되며, 감옥의 ‘나’가 공장에 그대로 가선 제대로 일할 수

없다. ‘나’라고 부르던 존재자 안에서 ‘누군가’가 죽는 이런 사건을 블랑쇼

는 ‘비인칭적 죽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장소와 양상을 바꾸어가며 하나의 생

안에서 내가 사는 삶이란 하나의 ‘나’가 죽고 다른 ‘나’가 태어나는 그런 과

정의 연속이란 점에서, 일종의 ‘윤회’라고 할 것이다. 이를 블랑쇼 개념을 다

시 써서 ‘비인칭적 윤회’라고 하면 어떨까?

이 비인칭적 윤회라는 관점에서 보면, 흔히 말하는 ‘나의 삶’에서 우리는 내가

거쳐가는 ‘모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아무도 아닌 자

’가 되어야 한다. 이미 보르헤스가 지적했던 것처럼, 거기에 ‘나’는 없는 것

이다. 즉 “나는 죽은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이란 ‘무아’라고 명명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이, 그때마다의 연기적 조건에 따라 상이한 ‘나’들, 그 모든 ‘나

’들이 되며 펼쳐지는 과정이다. 윤회가 그랬듯이, 비인칭적 윤회 또한 니체 말

대로 ‘생명’이라고 부를 어떤 힘이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지는 장이라고 할 것

이다. 여러 생의 윤회든, 한 생 안에서의 윤회든, 윤회란 ‘나’나 ‘진아’, ‘

아트만’보다는 ‘무아’나 ‘생명’이라고 불리는 게 더 적절한 어떤 힘의 영원

한 흐름이라는 사실이다. 윤회를 긍정한다 함은 이 힘의 되돌아옴, 이 흐름의 가

변성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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